퇴계 바로알기
삶
글로 쓴 초상화(학봉 선생의 『실기』, 이윤희 풀어 씀)
- 등록일 201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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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쓴 초상화 |
그 시절에도 선생 정도의 벼슬 사는 사람들은 초상화에 해당하는 영정(影幀)이라는 것을 그렸다. 그러나 퇴계 선생은 실제로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 그린 초상화를 남기지 않았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것들은 뒤에 꿈이나 상상을 통하여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첫머리에 선생의 수제자 중 한 분이 글로 그린 초상화를 실어서 독자들도 각자 선생의 모습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참으로 이러하셨다.
퇴계 스승님은 어린 시절에 언제나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과 관을 바르게 하고는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이 일상생활이시었다. 한 번도 어긋남이 없이 명랑하고 공손하며 삼가시었다.
여럿이 생활할 적에는 종일 단정히 앉아 옷과 띠를 반듯이 하고 말과 행동은 꼭 삼가시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고 존경하였으며 감히 업신여기거나 모욕을 줄 수 없었다. 성품은 간결 담박하고 말이 적었으며 명리와 호화로움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고 높은 벼슬을 두루 거친 뒤, 70세에 이르러 병이 깊자 임금이 의원을 보내었으나 그 의원이 이르기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임금이 너무나 슬퍼하여 사흘 동안이나 나랏일에 대한 회의를 중지하셨고 선생에게 영의정 벼슬을 내렸으며 첫째가는 예를 베풀어 장례 지내게 하셨다.
그러나 선생은 자기가 죽은 뒤에는 관직 높은 사람들처럼 비석을 세우지 말고 아무런 관직도 새기지 말며 다만 작은 돌에 “늘그막에 도산으로 돌아와 숨은 진성 이공의 묘”라고만 쓰라고 하셨다. 병이 심할 때에 이미 유언으로 남기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국장의 예를 내리더라도 사양하라는 훈계도 함께 남기셨다.
돌아가실 무렵에는 사림들이 선생을 평원에 우뚝 솟구친 산처럼 의지하였다.
그 돌아가심을 듣게 되자 아는 이 모르는 이 할 것 없이 탄식하고 슬퍼하지 않음이 없었다. 서로 더불어 위패를 모셔놓고 곡을 하였으며 가까운 읍의 사람들은 비록 촌 노인이나 들사람일지라도 모두 고기를 먹지 아니하였다.
장례에 이르자 먼 곳 가까운 곳에서 모인 사람이 수백이었다.
우리나라는 비록 문헌의 나라라 일컬어지기는 했어도 도(道)에 대한 학문이 밝지 못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져 낮게 처져 있었을 뿐이었다. 고려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도에 대한 학문으로 세상에 알려진 사람은 몇이 없었다.
퇴계 선생은 위로는 스승의 전하여 줌을 받지 못하였고 옆으로는 벗의 도움이 없었다. 뛰어나게도 성현의 글에서 홀로 얻으셨던 것이다. 중년 이후부터 날이 갈수록 그 배운 것을 가르침에 전념하게 되면서 이 나라에 도(道)를 밝혀 세우는 일이 선생에게 달려 있는 듯, 그 책임이 날로 무거워졌다.
머리를 숙여 책을 읽고 우러러 생각하다가 잠자고 밥 먹는 것도 잊곤 하였으며 휑하니 깨닫고는 다시 푹 익도록 실천에 옮기셨다.
그 학문의 큰 줄거리는 다른 사람이 넘을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그 얼개와 통이 매우 커서 차라리 성인을 배우다가 이르지 못할지언정 한두 가지 착함으로써 이름 얻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몸과 마음 닦아 나감에 매우 용감하여 차라리 있는 재주를 다하여도 잡지 못할까 할지언정 한 번도 늙고 병들었다고 게으르지 않으셨다.
정연한 차례가 있고 빨리 이루고자 하거나 급히 서두르는 병이 없었다. 묵묵히 공부를 더해 나가니, 어두운 가운데 해가 나타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뭇 성인의 글을 모르는 것이 없되 숨은 뜻을 끝까지 밝히고 언어나 문자의 자질구레한 말뜻에 그치지 않으셨다. 간추린 핵심을 지극하게 말할 뿐 깊거나 어두컴컴한 뜻은 말하지 않으셨다. 도가 이미 높아졌지만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듯 하고 덕이 이미 높아졌으나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듯 하셨다.
양심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름이 날로 더욱 순수하고 탄탄해지며 실천에 옮김이 날로 더욱 두터워지셨다. 그 보람이 나아가고 나아가기를 그치지 않아서 마치 돌아가실 때까지가 통틀어 하루인양 향상되셨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믿음이 두텁고 학문을 좋아하여서 무거운 책임을 지고 먼 곳에 이르게 되셨던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 있어서는 스스로를 매우 엄하게 다스리셨다. 음란한 음악이나 이상스럽게 눈에 띄는 겉치레 예절은 마음에 두지 않았고 포악하거나 오만하거나 간사하거나 치우친 기운은 신체에 남겨 두지 않으셨다. 하나 하나 실천한 것은 도리와 규범이요 하시는 말은 항상 하늘같은 도덕과 어질고 의로운 본성이었다.
하루하루 생활하는 모습은, 반드시 옷과 관을 가지런히 하고 눈길을 우러러보았으며 때로는 책상 앞에서 책을 보고 때로는 향을 사르며 고요히 앉아서 내면 세계를 살피는 공부를 하셨다. 종일토록 삼가고 삼갔고 한 번도 게으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집안을 다스림에 뚜렷한 법도가 있으셨다.
자손을 은혜로 어루만지고 의로운 교훈으로 이끌며 집안사람들을 너그러움으로 다스리면서 맡은 일에 충실하고 삼가라고 타이르곤 하셨다.
가정의 안팎이 기쁘고 유쾌하되 엄숙하고 화목하여 별로 노력하는 바 없어도 뭇 일들이 절로 그 순서를 얻었다.
살림은 소박하고 청렴하며 가난하셨다. 사는 곳이 겨우 비바람을 가렸고 거친 밥에 나물을 씹으니 남들은 감당하기 어려워할 정도였다. 선생은 그것이 몸에 푹 배어서 차라리 편안한 듯 하셨다.
조상을 제사지냄에는 그 정성과 효를 지극히 하고 형을 섬김에는 그 사랑과 존경함을 지극히 하셨다.
집안 사람을 참으로 화목하게 하고 외롭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두루 도와주고 건져 주셨다.
남을 접대함에는 공손하고 예가 있었으며 그 자신을 다스림에는 검소하고 도를 다하셨다. 기쁘거나 노함을 밖에 나타내지 않고 남을 꾸짖거나 욕하지 않으셨다. 비록 바쁘고 급한 지경에 놓였어도 한 번도 말을 빨리 하거나 다급한 기색을 짓지 않으셨다.
일이 옳고 마땅한 것이냐 아니면 이익이 있을 뿐이냐 하는 점을 가려냄에 엄하셨다. 가져도 좋을 것과 갖지 말아야할 분수를 살폈으며 이치에 거리끼는 것을 갈라내셨다.
일의 낌새를 미리 밝게 알아차리어 털끝 하나도 방종하거나 지나치지 않으셨다. 진실로 그것이 의로운 것이 아니면 수만금을 주어도 받지 않았고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 겨자 한 알일지라도 주워 가지지 않으셨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타고난 본성에서 나오니, 남의 착한 행동을 보면 두 번 세 번 칭찬하고 장려하여 반드시 그를 성취시키고자 하셨다. 남의 잘못과 실수를 들으면 거듭 거듭 탄식하며 안타까워하여 반드시 그 허물을 고치어 착하게 만들고자 하셨다.
이런 까닭으로 어진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그 도움을 얻었다. 선생을 우러러 본받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고 오직 착하지 못하다는 이름이 그 귀에 들릴까 두려워하셨다.
뒤 따라 배우는 사람들을 가르침에 귀찮아하거나 게으르지 않아서 비록 병에 들어 있을 때일지라도 직접 말로 설명하여 주거나 질문을 받고 의논함을 그치지 않으셨다.
학문을 가르치려고 늘그막에 도산의 기슭에 집을 지으니 방 하나가 고요한데 그림과 글이 벽에 그득하였다.
날마다 그 가운데 살면서 조심조심 본성을 보존하며 진리를 캐고 찾으셨다. 벼슬로부터 도리에 맞게 물러나 숨어서 남모르는 것을 기름에 즐거워, 걱정을 잊으셨다.
사람들은 감히 그 지은 바의 깊이를 엿볼 수도 없었다. 다만 그 꽉 차게 쌓인 것이 넘쳐흘러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 기상을 볼뿐이었다. 절로 마음이 너그러우며 몸이 여유롭고 얼굴이 윤택하며 뒷모습이 기운으로 충만함을 숨길 수 없으셨다.
가슴이 환하게 비치어 얼음 병에 가을 달이 비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느끼는 선생의 마음은 따뜻하고 순수하여 순금이나 아름다운 옥 같은가 하면 장중하기가 산악 같으며 조용하고 깊기가 연못 같았다. 단정하고 자상하며 한가롭고 편안하며 독실하고 중후하며 참되고 순수하여 겉과 속이 하나같고 나와 나 아닌 것에 틈이 없으셨다. 멀리 떨어져서 바라다보면 근엄하여 존경스러운 본받음이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면 따뜻하여 사랑스러운 덕이 넉넉하셨다. 비록 거칠고 고집 센 사나이나 정신이 이상한 사람일지라도 선생이 앉아 계시는 방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교만한 기운이 절로 스러졌다.
그 때까지의 문벌 있는 가문 사람들은 오직 과거 보는 이로움만 생각하면서 글을 읽었지 성현의 학문이 있음을 몰랐다. 오직 임금의 총애를 받고 녹을 얻는 영화만 알면서 관직에 있었지 기꺼이 물러나는 절개가 있음을 몰랐다. 그래서 올바른 도리에 어두운 나머지 그저 어지럽게 얽혀서 부끄러움도 없고 의로움도 없었다.
선생께서 일어남으로부터 비로소 사람 되는 까닭이 딴 곳에 있지 않고 그 가르침에 있다는 것을 글 읽는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공자와 맹자로부터 내려오는 뭇 학문을 모두 모아서 크게 이루셨다. 위로는 끊어진 실마리를 잇고 아래로는 그 길을 가고자 하는 뒤의 학자들에게 길을 열어 주셨다. 공자ㆍ맹자ㆍ정자ㆍ주자의 도(道)로 하여금 세상에 다시 빛나도록 밝혀놓으신 것이다.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시다.
-제자 학봉 김성일 씀-
* 이 글은 퇴계 선생을 오랜 동안 가까운 곳에서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던 학봉 김성일이 선생의 실제 모습과 업적들을 간추려서 그림 그리듯 기록해 놓은 것[實記]을 풀이한 것입니다.
-이윤희 풀어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