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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성취와 도전(김진현)2012년 1월 강연
- 등록일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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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성취와 도전
김진현(金鎭炫):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 위원장
前 과학기술처 장관
前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의 특징과 도전 >
1. 1945년 이후 독립한 140개 가까운 비(非)서방 제3세계 국가 중 근대화(modernization)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이다.
심지어, 정치, 교육, NGO, 과학기술의 일부에서는 선진국보다도 더 우월한 양적, 외형적 성장을 보였다. 한국은 식민, 분단, 전쟁, 가난, 인재부족이라고 하는 극단의 역경에서 1945년 이후에 독립한 140개 가까운 제3세계 후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극단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정치민주화는 Freedom House 자유지수에 의하면 현재 일본 및 서구와 같은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으며 Economist Intelligence Unit's의 민주주의 지수에 의하면 한국은 일본보다 앞서고 이탈리아, 프랑스를 압도하고 있다.
1970년대, 8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을 훨씬 앞섰던 인도, 싱가포르는 아직도 40위, 82위에 머물고 있는데 비해서 한국은 영국 다음에 20위에 있다.
언론자유도 국경없는기자회(RSF) 세계언론자유지수에 의하면 일본을 앞서 아시아에서 최고의 언론자유 국가이다.
근대경제성장이라고 하는 기준에서 보더라도 1인당 소득 1만 달러 이상 국가는 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부루네이, 싱가포르 등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지속적 인구의 증가, 지속적 1인당 소득의 향상, 지속적 산업구조의 고도화라고 하는 근대경제성장의 기준에서보면 탈락된다. 모두가 석유 수출에 의존하거나 싱가폴 같이 서비스 산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1945년 이후 독립한 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농업->소비재공업->중화공업->서비스산업->정보지식산업으로 고도화된 유일한 나라이다.
인구 5,000만 이상이며 1인당 소득 2만 달러 이상인 국가는 현재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한국을 포함한 7개국뿐이다.
과학기술 분야만 보더라도 해방당시 이공계 학사이상이 400명에 불과했고, 박사는 단 6명뿐이었으나 현재는 매년 4,000명 정도에 박사를 배출하고 박사과정 재학생만 해도 1만6천명을 넘는다. 한국의 이공계 대학생 수 93만 명은 우리보다 인구가 2배 반 많은 일본의 65만 명에 비하면 얼마나 양적으로 증가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현재 GDP대비 연구개발은 핀란드, 스웨덴, 이스라엘, 한국만이 3%이상으로 선진국인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도 앞서있다.
교육도 사육비를 포함한 교육비 지출이 선진국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최고이며 고등교육 단계 입학률도 한국이 OECD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외국 유학생 수를 보아도 대한민국 5천만이 13억의 중국, 12억의 인도를 앞서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외국 유학생 경우도 한국 유학생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적 다원성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종교의 개방 다원성은 특별히 놀랍다. 한국의 크리스찬 인구는 인구대비 30%선인데 이는 비기독교 아시아권에서 최고의 비율이다. 특히 놀라운 현상은 앵골라, 가나, 우간다와 같이 기왕의 전통종교나 고전적인 정통 종교가 없는 곳은 기독교 인구가 30% 넘는 곳도 있지만은 아시아, 중동, 기타 아프리카 국가에서 기존의 전통과 고전적 정통종교가 있는 나라에서 기독교 인구가 10% 이상인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더구나 인구 5천만의 대한민국이 3억 미국에 이어서 세계 제2위의 기독교 선교사를 해외에 파견하는 기적적 일이 벌어지고 있다(3위 영국, 4위 캐나다). 기존의 정통 기독교 선교국가인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영국을 제치고 불과 30년 만에 세계 제2위의 기독교 선교국이 됐다고 하는 것은 기적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심지어 최근 중국 베이징 사범대학교 한 교수는 중국 대륙이 한국 개신교에 한 교구로 전락할 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할 정도에 선교는 1945년 이후 대한민국의 경이적인 작품이라 할 것이다.
그 외에 문화예술의 개방과 한류와, K-POP의 해외 진출 역시 1945년 이후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 이룩한 큰 꽃봉우리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반기문, 백남준, 장하준, 신경숙, 조수미, 비, 김연아, 박지성, 손정의, 이회성, 강상중 같은 세계적인 엘리트들이 배출되고 보통사람들 조차도 세계를 향하여 콜롬버스적 탐험과 개척을 수행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 불교, 원불교, 선명회, good neighbors, 국제기아대책, 새마을, 가나안 농군학교 등의 해외 자원봉사는 1945년 이후 독립한 제3세계 국가로서는 예를 찾을 수가 없고 2009년에 대한민국이 공식으로 OECD 원조제공 국가(DAC member)로 된 것은 제3세계 근대화 개발사에서 획기적인 기록이다.
2. 압축성공 때문에 오는 도전―하나 하나의 개별적 성공속에 잉태한 위험 그리고 이들이 집적한 국가적, 사회적, 도덕적 해체현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근대화 혁명에 특징은 하나는 단절적, 압축적, 초스피드 현상이라는데 있다. 단계적, 점진적, 자생적 발전이기보다 과거와 단절, 자생적 요인과 외생적 요인에 의한 변종, 이탈, 현상이 대단히 많다. 그 중에 가장 극적인 현상이 인구 구조의 급변이다. 노령화, 소자화, 출산율이 세계기준에서 가장 급증하거나 가장 급감했다.
고령화에서 고령, 초고령에 이르는 시간이 프랑스의 경우 115년 39년, 일본의 경우 24년 12년인데 비해 18년 10년으로 2028년이면 초고령 사회로 넘어간다. 60~70년대 걸쳐 산아제한 세계모범국이 됐지만 그것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낙태율을 기록한 부끄러운 반윤리의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구구조의 급변과 도시화가 겹쳐져 독신율, 자살율, 이혼율이 OECD 국가 중 최고를 기록하고 도시화율 90%에 아파트가 주 거주형태가 되는 특이한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또한 세계최고 인공에너지 소비를 기록하고 있는데 에너지 소비 전체로는 세계 10위로 영국,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보다 많고 석유 수입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이며 석탄소비는 세계 7위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수입 의존도는 96%에 달한다. CO2 배출 9위 국가로 영국, 프랑스, 인도, 브라질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으며 1인당 배출량에 있어서도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태리보다 많다.
과잉소비(과잉의료, 과잉투약, 과잉교육, 과잉골프, 과잉국제행사, 국제회의, 과잉식사, 과잉공사, 과시소비)가 현저하며 소득격차와 양극화가 급격하고 교육의 질은 양적 성장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특히 국가기관에 신뢰도는 국회, 경찰, 청와대, 법원이 가장 낮아 이 나라 권력과 정치 신뢰도가 극히 낮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뢰와 사회연대의 부정은 그대로 범죄로 나타나는데 2007년 기준 무고죄는 일본에 비해서 38배, 위증죄는 24배라고 하는 놀라운 불신과 자해적 사회해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60년에 걸친 근대화혁명에 결정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나친 압축과 외형에 치우친 것이어서 우리 내부에 신뢰, 존경, 화합이 깨졌다. 그래서 새 지폐에 넣을 역대 대통령을 한분도 못가진 나라가 되었고, 초대 대통령 기념관을 못짓는 나라가 되었고, 기업계 리더십 가운데 본인, 가족들의 재산관계 송사나 또는 불명예로 법정에 서지 않는 기업인이 거의 없다시피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통의 좋은 가치와 근대의 좋은 가치가 만나 더 좋은 가치와 제도와 상징을 만들지 못하고 나쁜 가치, 나쁜 관행, 나쁜 상징을 낳는 ‘변종근대화’, ‘파생근대화’ 현상. 전통과 근대 합작의 사생아 현상. 동양전통의 가족주의와 서양근대의 개인주의가 만나 가족 같은 연대의 ‘사회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기주의’로 전락―공법인격인 교회, 학교, 언론은 물론 권력과 금력(상법상의 법인격인 주식회사) 마저 가족이기주의로 사유화 되었다. 새로 형성된 한국의 귀족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군자다움의 결여가 생산하는 사회적 국가적 갈등이 증폭되었다. 국가공동체, 사회공동체의 통합관리 능력, 자율적 가버넌스의 의지약화, 사회공동선, 공익, 국익 평가능력의 쇠퇴 되었다. 근대 국가 형성과정의 특성으로 인한 국가공동체, ‘시민국가’ 개념 인식의 근본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선진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근대성의 보편성과 특수성, 전통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규명 성찰, 정리, 통섭을 통하여 성공한 근대화 선진화(先進化)를 인간, 생명, 윤리의 보편적 가치가 우선하는 착한 선진화(善進化)와 안전 공동체로 변질시켜야 한다.
3. 근대화 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에 오는 지구촌적 탈근대, 초근대 도전
또 하나의 도전은 '근대화의 세계화' 즉, 중국과 인도의 근대화의 본격적인 진입이다. 중국과 인도 즉, 히말라야권의 근대화 진입은 세계의 생명자원(물, 에너지, 먹거리) 조건을 근본적으로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중국 13억, 인도 12억 히말라야권은 앞으로 2050년경 중국 16억, 인도 16억, 파키스탄 3억, 방글라데시 3억, 미얀마 1억 5천 등 40억에 이를것이며 세계 인구의 반을 차지할 것이다. 이들의 근대화는 20세기 말 약 9억 내지 10억에 이르렀던 1인당 소득 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 즉, 북미, 북아메리카, EC 유럽국가,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그리고 일부 중동의 작은 국가들이 지나간 200여년에 걸쳐 만든 근대화 즉 석유시대, 교외시대(별장시대), 마천루시대, 자동차 시대의 종언 내지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20세기의 끝을 넘어 근대의 끝이라고 하는 존 루칵스의 주장은 확실히 음미할 가치가 있다.
중국은 불과 1인당 소득 4,000$ 미만 수준에서 이미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온실가스 배출국가가 되었다. 2009년서부터 자동차의 생산과 소비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위의 자동차 국가가 되었다. 이미 2009년에서부터 세계 제1위의 에너지 소비 대국이 되었으며 석유수입 제2등, 석탄수입 제1등의 에너지 해외의존 국가가 되었다. 전통적인 콩 수출국가였던 중국은 1996년부터 일거의 콩 수입국가로 변한 다음 2010년 현재로서는 세계 콩 수입의 57%를 차지하는 2등(일본), 3등(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1등을 하고 있다.
세계 최악의 공해도시 20개 가운데 16개 도시가 중국에 있으며 세계 최고로 나쁜 오염된 공기가 요령성 본계이며 세계2번째로 오염된 바다가 발해만이다. 현재 중국에는 1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하고 있으며 27기가 건설중이고 2020년까지 100기, 2030년까지 300기, 2050년까지 500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1979년 드리마일 원자력 사고,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를 보면 10~15년 주기의 원자력 재난의 확률을 읽을 수 있다. 다음 제4차 원자력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단연 중국이다.
우리는 중국이 한국과 같이 같은 수준(35%)의 자동차 보유, 일본과 같은 수준(70%), 미국과 같은 수준(90~100%) 의 중국이 도달한다고 생각할때 즉, 4억대, 9억대, 12억대의 자동차가 중국 땅을 누빈다고 생각하면은 과연 그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Klaus Toeffer UNEP 사무총장은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 방식으로 중국의 경제성장이 배가 된다면 그것은 지구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과 인도가 중국문제군, 인도문제군으로 해서 중국이나 인도 스스로 뿐만 아니라 그것이 미치는 세계적인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서 또, 지구촌적인 지속가능 모델을 추구하고 정립하고 발전시켜 세계 지구촌의 평화를 탐구해야 한다.
4. 미래관찰과 대한민국으로부터의 대안 찾기
대한민국에 산다고 하는 것은 바로 안보 지정학적 위험에 있어서나 근대화의 세계화, 중국문제군, 인도문제군으로 인해서 21세기 인류문제군, 지구촌 trilemma(경제성장, 생명자원, 환경의 삼각 모순) 의 진앙지에서의 삶이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생명자원과 평화접근이 훨씬 우월한 미국이나 유럽, 북유럽 선진국보다 21세기 인류문제군, 지구촌 Trilemma의 고통이 가장 심각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과 히말라야권에서의 삶이다.
우리는 선진국의 환경론자, 선진국의 이상론자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지구 질서 대안모색이라고 하는 입장보다 더 절실한 우리 스스로의 실체적 위험과 필요속에서 대한민국만의 삶의 대안, 히말라야권과 지구촌 삶의 새로운 질서, 새로운 지구촌 지속가능 질서 즉, 새로운 문명질서 창조에 가장 앞서나가야 한다.
필자는 Global Welfare Tax 또는 휴전선의 세계평화 지대화 등을 1970년대부터 주장해 왔다. 또한 한국인의 평화이상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기미독립선언서, 우남 이승만의 동양 최초 예수국가 건설, 백범 김구의 문화국가론, 안재홍의 '다사리', 정의채 몬시뇰의 3000년 세기 지구촌 공통 문화 시대론에 잘 나타나 있다.
어떤이는 이런 한국인의 세계평화 이상이 단군의 홍익인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데 한국에서의 기독교 문화의 특성과 단군의 홍익인간의 이상이 합쳐질 수 있는 것인가. 이 역시 우리의 탐구의 대상이다.
< 대한민국의 갈림길 >
―새 지구촌 문명 창조국이 되느냐,
대극성 충돌로 인한 자멸이냐―
대한민국 변화의 가장 큰 특징, 세계사적 특징은 그 전개의 대극성(對極性) 양극성이다. 전통적 대륙국가에서 1945년 이후 일거에 해양국가로 바뀌었다. 개화에 가장 완강히 저항했던 ‘최후의 은둔국’은 아시아에서 국제회의를 제일 많이 하고 무역 의존도 80% 넘고 증권시장 외국인 주식비율이 40%나 되는 정상 국가치고는 선진, 후진 어느 역사에도 예가 없는 열린사회가 되었다. 1894년 이후 다섯 번의 ‘국제전쟁’을 겪고 북한 3대 세습왕조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도 어느 덧 ‘휴전’이라는 60년 임시 평화에 도취하여 전쟁과 안보위험을 잊은 나라가 되었다. 같은 역사, 같은 핏줄이 숨 쉬는 땅위에서 남과 북은 세계사에서 찾기 힘든 극단의 대척관계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1945년 이후 독립한 140개 가까운 비(非)서양 제3세계 국가 중 민주정치, 시민권리, 언론자유와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성취한 유일한 나라이다. 교육, 과학기술의 선진화, 정보화, 문화와 사회 가치 다원성 등의 일부는 서양선진국들을 능가한다. 나는 이를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라 부른다. 단순히 압축성장의 성공이란 표현으로는 부족한 이런 경이와 기적 뒤에는 자칫 자멸과 해체를 결과할 수 있는 대극성을 극복해야 하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민주화‘운동’, 비정부기구(NGO)‘활동’, 언론‘자유’는 선진국에서 보이는 일부 과잉과 불합리보다도 훨씬 더 악성으로 역동적인데 투표율은 40%에 그쳐 선진국의 60~80% 보다 훨씬 낮고 국회와 정당의 문화는 조폭이나 말썽 많은 업자 단체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육열과 교육비 지출은 세계 최고이고 K-pop이 지구를 휩쓸고 놀랍게도 유교, 불교 국가였단 나라가 세계2위의 기독교 해외선교 국가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안으로는 거꾸로 사회해체 현상이 극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세계최고(또는 OECD 최고)의 이혼율, 낙태율, 성형수술, 자살율, 소자화율 그리고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사기죄와 위증죄 비율이 증명하듯 반(反)인륜 신(新)야만 사회가 되었다. 마치 언제 우리가 유교문화, 선비나라의 전통을 가졌었느냐고 비웃듯. 선진국을 앞지르는 높은 도시화율에다 작은 섬나라를 제외하고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도시 인구 반이상의 아파트 거주형태, 1인당 세계 최고의 전기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이라는 선진국과도 대극적인 변종 근대화의 길을 겪고 있다.
더 이상 발전과 역(逆)발전, 개방과 사회해체, 자유와 탐욕, 성장과 반(反)문명간의 대극적 양극적 팽창은 지속 될 수 없다. 이제 대극적 변화의 주동력이었던 박정희 전두환 체제도 김대중 노무현 체제도, 경제 제1주의도 민주화 만능주의도 효용이 끝났다.
이제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을 기반으로 극단의 대극성을 극복 승화하여 인류의 지속가능한 새 문명의 대안 만들기에 앞장서든가 아니면 대극성 양극성의 내부 충돌의 연장으로 그간의 성취를 침식시켜 자멸로 가느냐의 두 갈래 길만이 남아있다. 우리는 흔히 한국의 세계적 웅비의 길을 세계적 인물, 세계적 기업의 성공, K-pop의 성공에서 찾고 있다. 그런 유능한 그릇들이 필수조건임에는 틀림없지만 유능한 그릇 많다는 것이 한 나라 한 사회공동체를 자동적으로 힘있고 존경받는 선진국, 선진(善進) 모범국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세계적 예술인, 노벨상 수상자, 기업인들이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이들의 국력이나 국격(國格)은 오늘의 추악한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사회공동선과 미덕의 리더십이 없는 모범국은 없는 법이다.
외국 엘리트 중에도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처럼 세계적 한국모델의 가능성을 보는 이도 있고 미국의 폴 캐네디처럼 비판적인 이도 있다. 우리 스스로 대극성 극복의 길을 찾아야 한다. 첫째는 성공의 신화 즉 한강의 기적 신화 속에 박힌 부패 공권력 의존 경제제1주의 그리고 민주화성공 신화 속에 가린 운동권적 독선 선동 폭력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성공자들과 성공세력들의 성실한 성찰과 체계적 참회에서 시작된다. 둘째는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 속에서 21세기 지구촌 사회요구와 일치하는 것을 찾아 더욱 보편화 하는 것이다. 실천적으로는 생명자원조건에 대한 여러 가지 궁리를 할 수 있다. 정의채 몬시뇰과 김지하 시인의 생명사상, 이태석 신부의 아프리카 헌신, 박노해 시인의 이슬람 중에서도 쿠르드, 아체 등 소수민족 나눔운동, 조동일 교수의 동양문명론 그리고 말로만이 아닌 ‘녹색성장’ 전략이 그런 것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