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바로알기

한국의 선비정신과 현대사회(오석원)-2012년 3월 강연

  • 등록일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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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비정신과 현대사회

 

오석원 (성균관대 유학대학 원장)

 

 

1.선비의 개념과 한국인의 특성

(1)선비의 개념: 지성인, 지도자, 현대사회의 CEO, 공무원

(2)선비의 연원: 한국인의 고유정신, 유교의 선비정신 수용 발전

예) 션(儒,󰡔龍飛御天歌󰡕,1445년) , 선븨(崔世珍(1473-1542)의 󰡔訓蒙字會󰡕,1527년)

예) 고려의 현사(賢士)와 처사(處士), 신라의 선인(仙人, 國仙)

예)「우리 민족의 넋과 정신」(申采浩, 朝鮮上古史)

(3)한국고대인의 특성: 도덕성, 순수성, 인본주의, 평화정신, 종합성

예)「好讓不爭」(山海經)

예)「仁而好生, 天性柔順」(後漢書, 東夷傳)

예)「仁者壽, 君子不死之國」(說文注)

예)「弘益人間」(檀君神話)

예)「玄妙之道」(崔致遠,鸞郞碑序文)

 

2.유교의 선비정신과 송대의 도학사상

(1)선비(士)정신의 연원: 공자의 춘추(春秋)정신과 맹자의 의리(義理)사상

(2)선비정신의 내용

①순수한 마음과 정도(正道)와 정의(正義)에 대한 신념: 주체성

예)「士,志於道」(論語,里仁)

예)「士何事…尙志…仁義」(孟子,盡心上), 「志士」,「義士」

예)「子張問崇德辨惑,子曰主忠信,徙義崇德也...旣欲其生,又欲其死是惑也」

(論語,顔淵)

예)「無恒産,有恒心」(孟子,梁惠王上),「志操」

예)「行己有恥,使於四方,不辱君命,可謂士矣」(論語,子路)

예)「羞惡之心, 義之端也」(孟子,公孫丑上)

예)「敬以直內, 義以方外」(周易, 坤卦)

②부정(不正)과 불의(不義)에 대한 비판정신: 민족정기의 확립

예) 대내적 비판(道學精神):「闢異端衛正道」

예) 대외적 항쟁(義兵精神):「衛正斥邪(斥邪衛正)」

예) 역사적 비판(春秋精神):「春秋大義」,「春秋史觀」

③강인한 실천정신

예)「士不可以不弘毅,任重而道遠」(論語,泰伯)

예)「君子之仕也,行其義也」(論語,微子)

예)「志士仁人,無求生以害仁,有殺身以成仁」(論語,衛靈公)

예)「舍生而取義」(孟子,告子上)

예)「可以死,可以無死,死傷勇」(孟子,離婁下)

(3)송대의 도학사상(道學思想): 성리학 기반의 의리의 실천에 궁극적 목적 있음

①도(道)의 자의(字意): 길(道路), 인간다움(道理), 진리(求道)

예)「吾道一以貫之」(論語,里仁)

예)「朝聞道,夕死可矣」(論語,里仁)

②도학의 내용: 성리학(性理學)+의리학(義理學)+종교성(殉道精神)

예)「道學,本在人倫之內,故於人倫盡其理,則是乃道學也」(󰡔栗谷全書󰡕,語錄上)

예)「夫道學者,格致以明乎善,誠正以修其身,蘊諸躬則爲天德,施之政則爲王 道」(󰡔栗谷全書󰡕,卷15,東湖問答)

③도통(道統):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 공자(孔子), 맹자(孟子), 정자(程子), 주자(朱子)

④송대의 도학자: 󰡔송사(宋史)󰡕의 「도학전(道學傳)」(4권)에는 송대의 6현

(周敦頤, 邵雍, 張載, 程顥, 程頤, 朱熹)과 장식(張栻) 및 이들의 문인들이

수록되어 있음

 

3.한국의 유학사상과 조선조 선비정신

(1)삼국시대: 오경(五經)중심, 공동체의식, 충효정신

예)고구려의 太學(372년 小獸林王2)

예)백제의 일본전파(404년 阿直岐, 405년 王仁)

예)신라의 國學(682년 神文王2)

(2)고려시대: 오경중심, 개별성, 자연성, 문학

예)國子監(992년 成宗11)→成均館

예)崔承老(927-989)의 時務論, 崔沖(984-1068)의 私學

예)睿宗(1105-1122), 仁宗(1122-1146) 등의 經典講學과 問難

(3)조선시대: 사서(四書)중심, 성리학, 선비정신, 도학(道學)사상, 의리사상

예)成均館(1398년, 太祖7): 서울 소재의 국립대학

예)「崇道學, 正人心, 法聖賢, 興至治」(靜庵集)

예)「今日只有一死 死生進退無媿義字」(重峯集, 年譜)

예)李滉(1501-1570)과 李珥(1536-1584)의 聖學

예)李恒老(華西, 1798-1868)의 척사위정(斥邪衛正)사상

예)崔益鉉(勉菴, 1833-1906)과 柳麟錫(毅菴, 1842-1915)의 抗日정신

(4)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공인의식(公人意識)

①저서:『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508卷), 「경세유표(經世遺表)」(1817),

「목민심서(牧民心書)」(1818), 「흠흠신서(欽欽新書)」(1819)

②다산학의 특징: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실학

예)「六經四書,以之修己,一表二書,以之爲天下國家,所以備本末也」(自撰墓誌銘)

예)「德者,篤於人倫之名,孝弟慈是已」(與猶堂全書,論語古今註)

③다산의 공인의식(「목민심서」):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

예)「君子之學,修身爲半,其半牧民也」(牧民心書,自序)

예)「牧民曰士…仕者,皆牧民也」(與猶堂全書, 原牧)

예)「牧,爲民有也」,「均是民」 (與猶堂全書, 原牧)

 

4. 문묘배향의 한국의 도학자(동국18현)

(1)설총(薛聰, 650경-740경): 빙월당(氷月堂), 홍유후(弘儒侯)

(2)최치원(崔致遠, 857-?): 고운(孤雲), 문창후(文昌侯)

(3)안향(安珦, 1243-1306): 회헌(晦軒), 문성(文成)

(4)정몽주(鄭夢周, 1337-1392): 포은(圃隱), 문충(文忠)

(5)김굉필(金宏弼, 1454-1504): 한훤당(寒暄堂), 문경(文敬)

(6)정여창(鄭汝昌, 1450-1504): 일두(一蠹), 문헌(文獻)

(7)조광조(趙光祖, 1482-1519): 정암(靜菴) 문정(文正)

(8)이언적(李彦迪, 1491-1553): 회재(晦齋), 문원(文元)

(9)이황(李滉, 1501-1570): 퇴계(退溪), 문순(文純)

(10)김인후(金麟厚, 1510-1560): 하서(河西), 문정(文正)

(11)이이(李珥, 1536-1584): 율곡(栗谷), 문성(文成)

(12)성혼(成渾, 1535-1598): 우계(牛溪), 문간(文簡)

(13)김장생(金長生, 1548-1631): 사계(沙溪), 문원(文元)

(14)조헌(趙憲, 1544-1592): 중봉(重峰), 문열(文烈)

(15)김집(金集, 1574-1656): 신독재(愼獨齋), 문경(文敬)

(16)송시열(宋時烈, 1607-1689): 우암(尤菴), 문정(文正)

(17)송준길(宋浚吉, 1606-1672): 동춘당(同春堂), 문정(文正)

(18)박세채(朴世采, 1631-1695): 남계(南溪), 문순(文純)

 

5. 현대사회의 특징과 미래방향

(1)현대사회의 특징: 서구 근대사상과 과학이 중심이 된 문화

①세계의 단일화와 개방성

②지식의 대중화와 전문성

③문화의 다양화와 이질성

(2)현대적 가치의식의 특징과 문제점

①물질 중심의 가치관과 도덕성의 상실

②개인 중심의 가치관과 극단적 이기주의

③인간 우월주의의 가치관과 생태계 파계

(3)유교의 역할

①순수한 심성과 인격의 함양

②올바른 현실인식과 도덕적 실천

③엄격한 책임의식과 공동체 의식

④투철한 역사의식과 진정한 개혁

(4)미래의 방향

①성숙된 인간의 대중화

②도덕성 기반의 물질 추구

③개별적 주체성의 인정과 전체적 보편성의 추구

④생명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한 인류의 평화공존 도모

⑤공해의 예방과 자연과의 친화(親和)적 관계 모색

 

 

 

 

 

<참고자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성학(聖學)과 선비정신

 

1. 머리말

 

유학의 특징은 현실을 긍정하는 입장에서 오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함에 있다. 그러므로 『중용󰡕에서 “도(道)는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듣지 않는 바에서도 두려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은 삶의 매 순간에 진리의 도가 있음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대체로 도가 일상생활 가운데 유행하는 것은 어디를 가도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이치가 없는 곳은 한군데도 없는 것이니 어느 곳에서인들 공부를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잠깐 사이라도 정지할 수가 없으므로 순간에도 이치가 없는 때가 없으니 어느 때인들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어느 것이나 장소와 때에 따라 끊임없이 인격적 수양으로서 존양(存養)하고 성찰(省察)하는 공부의 필요성을 말한 것이다. 비록 평범하고 비근한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완성된 인간으로서의 성인(聖人)을 지향하는 데에 인간 존재의 참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퇴계는 성인이 되는 요령이 바로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의 윤리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인간의 지속적인 성실한 노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중화위육(中和位育)’의 공효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이룩하는 데에 퇴계학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인 인간의 삶 가운데서 인격의 도야에 중점을 둔 퇴계의 학문은 무엇보다도 사실적 지식보다는 도덕적 가치 문제가 중심 과제가 된다. 태극 ‧ 이기 ‧ 심성론 등의 성리학적 분석도 결국은 인간의 주체적 자기인식과 도덕적 실천의 정립을 위한 출발인 것이다.

퇴계는 일생동안 성인을 목표로 하여 성학에 진력하였다. 만년에(68세, 1568년) 선조에게 올린 글과 그림을 󰡔성학십도(聖學十圖)󰡕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성학십도󰡕에는 그의 온축된 사상이 체계적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그가 추구했던 삶의 목표와 내용 및 실천방법 등이 가장 잘 정리되어 있다.

퇴계의 󰡔성학십도󰡕와「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를 좀더 자세히 분석하여 보면 퇴계가 학문의 이상과 목표로 삼았던 것은 성인(聖人)이며, 인간주체 확립의 근거로서 심법(心法)을 중시하였으며, 구체적 수양방법으로 지경(持敬)을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성(聖)‧심(心)‧경(敬)이라는 세 개의 고리가 연결되어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먼저 퇴계 학문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하여 󰡔성학십도󰡕와「진성학십도차」에 나타난 위의 세 가지 개념의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또한 퇴계의 의리정신에 근거한 실천적 삶을 이해하기 위하여 퇴계의 선비정신과 출처관을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퇴계사상의 특징과 후대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였다.

 

 

2. 퇴계의 성학과 경

 

1) 성학의 개념과 내용

 

성학(聖學)이란 성인(聖人)을 목표로 한 학문이다. 여기에는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과 함께 성인을 배우는 학문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인에 대하여 공자는 널리 백성에게 베풀어 대중을 제도하는 인(仁)의 극치로서 말하였고, 맹자는 인륜의 궁극적 경지이며, 또한 인간의 덕성이 극대화하여 타인에게 감화를 주는 경지로서 말하였다. 또한 송대의 주렴계(周濂溪)도 “성인이 중정(中正)과 인의로서 인간 윤리생활의 최고 표준을 세우고, 사욕이 없는 상태로서의 정(靜)을 위주로 하여 인극(人極)을 세운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유학에서 말하는 성인이란 인간 자신 속에 내재한 성실한 주체성과 보편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체득하여 실천하는 최고의 인격체라고 할 수 있다.

퇴계는 이러한 성인의 구체적인 표상을 고대의 요(堯)와 순(舜)에서 찾고 있다. 그러므로 󰡔성학십도󰡕를 올리게 된 이유를 성학을 권도하고 군덕(君德)을 보양하여 요순의 융성함에 이르도록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당시의 군왕인 선조(宣祖)를 도와 요순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도록 한 퇴계의 취지를 알 수 있다. 또한 퇴계는

 

제왕의 학문은 그 준칙과 금지의 조목이 비록 일반 학자와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인륜에 근본하여 궁리하고 실천함으로써 심법의 절실하고 요긴한 것을 구하는 데에는 같지 아니함이 없다.

 

라고 하여 일반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의미임도 아울러 밝혀놓았다. 이와 같이 보면, 성학의 적용범위에는 제왕으로서의 성군과 일반인으로서의 성인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봉건주의 시대상황에서는 군왕의 책임이 크고 그 영향이 심원하므로 성학을 위한 일차적 대상이 제왕에게 집중되었으나 넓게 보면 인간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하겠다.

성학에서의 학(學)의 개념은 이론적 지식의 의미보다는 실천적 태도의 의미가 더 크다. 공자가 안연의 호학(好學)을 언급할 때의 학의 내용도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이론적 지식의 측면보다 도덕적 실천태도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퇴계는 학(學)의 개념에 대하여 “학(學)이란 그 일을 익혀 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을 좋아하면 다만 마음으로 좋아함에 그쳐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 선을 체득하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성학의 내용은 안으로는 개인의 인격을 함양하여 성인이 되고(內聖) 밖으로는 인류 사회에 덕치에 의한 왕도를 구현(外王)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넓게 보면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목표로 하는 유학 자체를 의미하며 또한 유학의 도를 실현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도학(道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도의 사회적 구현은 무엇보다도 실천주체의 성숙된 인격이 기초될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으므로 성학은 내적 자아에 대한 각성과 인격 수양에 초점이 모아진다.

퇴계는 󰡔성학십도󰡕의 제일 첫머리에 「태극도」를 실었다. 이는 주자가 󰡔근사록󰡕에서 「태극도설」을 제일 먼저 실은 의도와 같은 것이다. 즉 성학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우주의 궁극적 본질인 태극의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이러한 천도와 논리적 연계성을 갖고 있는 인간의 본질을 올바르게 확립하고자 함에 그 근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자학을 계승한 퇴계는 태극을 이(理)로 파악한다. 이(理)는 모든 존재의 변화와 현상의 궁극적인 소이연(所以然)으로서 그 속에는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로서의 필연법칙과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으로서의 당위법칙이 갖추어져 있다. 소당연을 아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아는 것이요, 동시에 소이연을 아는 것은 이(理)의 소종래(所從來)인 천(天)을 아는 것이다. 퇴계는 이러한 당위성과 필연성을 일치시켜 보려는 입장에서 생생(生生)하는 이(理)의 능동성을 강조하였다. 이(理)는 비록 형체가 없고 작위성이 없는 존재이지만 또한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생성원리라고 본 것이다.

퇴계는 이(理)의 능동성의 문제를 체용론으로 해명하고 있다. 본래 본체와 작용의 이론은 형이하인 현상계에서 동정(動靜)의 문제로 설명하는 방법인데, 퇴계는 형이상인 이(理)의 세계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체용을 구체적인 사물 위에서 말한 것도 있지만, 본질적인 도리 위에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물 위에서 말한다면, 배는 물 위에서 가는 물건으로 그 가능성의 원리가 본체이며 그 원리의 실현이 작용이다. 또한 도리 위에서 말한다면, 형체와 작위성이 없는 상태로서의 ‘충막무짐(沖漠無朕)’은 인간의 생물학적 감각을 초월한 상태로서의 이(理)의 본체이고, 동시에 모든 사물의 생성원리가 이미 다 갖추어져 있음으로서의 ‘만상삼연이구(萬象森然已具)’는 이(理)의 작용이다. 즉 무위(無爲)로서의 형식적인 개념 규정이 이(理)의 본체라면 능연(能然)과 능생(能生)으로서의 능동적 측면이 이(理)의 묘용(妙用)이 되는 것이다.

퇴계는 비록 이와 같이 이(理)를 체용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궁극적인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체용일원(體用一源)’설을 통하여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理)의 무위(無爲)적 측면보다는 묘용(妙用)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퇴계의 기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퇴계는

 

다만 본체의 무위하다는 것만 보고 묘용의 능동적인 현행(顯行)을 알지 못하고 이(理)를 사물로 오인한다면 도에 또한 멀지 않느냐?

 

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퇴계가 이(理)의 묘용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은 의리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만물을 창조하는 궁극적 근원처로서의 생생(生生)의 원리를 밝혀 인간 존재의 참된 의미를 확립하고자 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만물을 생성하는 태극의 이(理)가 인간에 있어서는 인(仁)이 된다. 그러므로 주자는 ‘인(仁)은 천지가 마음을 생하는 마음이요, 사람이 이것을 얻어서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생성의 원리인 천의 이법에 의하여 존재하므로 그 본성은 천지만물과 동질성을 갖는 의미에서 일체감(同胞愛)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仁)의 본체로서 사랑의 원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서 곧 인(仁)의 작용인 것이다.

그러므로 퇴계는 성학의 요점이 인(仁)을 구함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聖學은 仁을 구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모름지기 이 뜻을 깊이 체득하여야 천지만물과 더불어 일체가 됨이 이렇다 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의 개별성을 인정하면서 나의 존재가 천지만물과 일체가 되고 하나의 이(理)에 기초되어 있음을 알아 타자(他者)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와 같이 사랑할 수 있다면 이것이 곧 인(仁)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학은 인(仁)을 체인하고 실천한다는 의미로서 인학(仁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 마음 속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확대하여 나갈 때, 궁극적으로는 천도와 합일되는 경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퇴계는 “인(仁)이란 것이 비록 천지만물과 일체가 되나 반드시 자기로부터 근본이 되고 주재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비록 천지만물과 일체가 되는 궁극적 경지로서의 인(仁)의 경지를 말한다 하더라도,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반드시 자기로부터 근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학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주체 확립이라고 할 수 있다.

 

 

2) 심학의 구조와 특성

 

인간의 주체를 확립하여 몸을 주재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즉 심법(心法)이 중요하다. 이 마음에는 사고 작용이 있기 때문에 성인이 되기 위한 목표설정과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 󰡔성학십도󰡕 가운데 제6도에서 제10도까지의 5도는 인간의 심성(心性)에 근원하여 그 해명과 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성학십도󰡕의 중심 과제는 심의 분석과 해명이요, 심을 다스려 수양하는 심법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퇴계가 󰡔심경󰡕을 지극히 존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마음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마음의 구조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마음의 수양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인간다움을 확립한다는 의미에서 퇴계 성학의 중심내용은 심학(心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마음은 항상 외물의 영향을 받아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 조금이라도 방종하면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의 의미를 망각하거나 선(善)을 향한 노력을 포기하여 악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므로 퇴계는 “성문(聖門)의 학문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으면 어두워져서 얻지 못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심에는 한 덩어리 기관으로서의 혈육(血肉)뿐만 아니라 신명(神明)이 승강하는 의식작용이 깃들어 있다. 이 정신으로서의 의식이 있기 때문에 자기 존재뿐만 아니라 우주의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욕구 등을 조절하여 인간의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게 할 수 있는 주재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퇴계는

 

체용을 겸하고 동정을 함께 하여 일신의 주재가 되며, 마치 고리와 같이 단서가 없고, 끊임없이 반복하여 그침이 없는 것이 심의 작용이다.

 

라고 하였다.

심에는 인심의 작용인 기질지성으로서의 기(氣)와 도심의 본질인 본연지성으로서의 이(理)라는 두 요소가 함께 있다. 심에서의 이 이와 기는 서로 대립적 개념이면서도 동시에 서로 조화되는 역할이 있다. 그것은 심(心)에 ‘허령불매(虛靈不昧)’의 신명성(神明性)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허(虛)는 심에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이(理)의 본성이 되며, 영(靈)은 사물의 이(理)를 궁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기능 때문에 심은 불매(不昧)의 상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퇴계는 “심이 비록 한 몸의 주재가 되나 그 본체의 허령이 천하의 이(理)를 주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성학은 성선설의 기반 위에서 인간의 본성이 올바르게 구현됨을 지향한다. 인간의 본성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본능적 욕구로 나타난 기질지성과 인의예지에 근거를 둔 본연지성이 있다. 전자는 육체와 더불어 갖게 되는 것으로 다른 동물에게도 있는 식색(食色)의 성이라면, 후자는 육체와 관계없는 본성으로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다움의 천지(天地)의 성이다. 이러한 구분은 논리적 분석일 뿐 실제로 두개의 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퇴계는 “원래 성이란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와 관련짓지 않고 말하면 본연의 성이요, 기질에 입각하여 말하면 기질의 성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질에는 유위(有爲) ‧ 유욕(有欲)의 성질이 있기 때문에 악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선과 악에 대하여 퇴계는 “이(理)가 드러나는 동시에 기(氣)가 따르면 선이고, 기(氣)가 가리는 동시에 이(理)가 숨으면 악이다”라고 하였다. 즉 사물에서 기가 순선한 이의 원리대로 순하게 작용하여 이가 그 소당연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경우 선이 되지만, 기의 작용에 방해되어 이가 그 소당연을 실현하지 못하면 악이 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기질의 성이 자칫 인욕으로 흐르게 됨을 막고 순선한 천리를 보존하는 것이 퇴계 심학의 중심과제라고 할 수 있다.

천리와 인욕을 판별하고, 기질의 중절(中節)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곧 심의 작용에 달려 있으므로 심을 다스리는 요점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심의 존재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요구한다. 퇴계는 심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외물에 접하여 구체화된 감정과 발동하기 이전의 바탕인 본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심은 순선한 사단(四端)을 갖춘 본연지성인 이(理)와 선과 악의 기미가 되는 칠정(七情)을 갖춘 기질지성인 기(氣)가 합쳐 있는 허령한 존재인 것이다.

퇴계는 심과 선악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요약하면 이와 기를 겸하고 성과 정을 통섭하는 것은 심인데 성이 발하여 정이 되는 즈음이 곧 한 마음의 기미요, 만 가지 변화의 추요로서 선과 악은 여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즉 순선한 본성이 그대로 구현된 감정은 성이 될 수 있으나 기품과 섞이는 과정에서 기가 발한 것이 중절하지 못하고 인욕에 가려지면 악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심에는 형기에서 나와 인욕에 가려지기 쉬운 인심(人心)이 있고 성명(性命)에 근원하여 의리에 깨달은 도심(道心)이 있다. 퇴계는 이러한 인심과 도심을 올바르게 구분하고, 도심을 기반으로 하여 중용을 구현하는 요순의 심법을 가장 중요시 하였다.그러므로 인심에서의 인욕을 극복하고 순수한 본성으로서의 도심을 밝혀 최고선을 추구하는 것이 퇴계 성학의 요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는 내면의 주관적 마음과 외면의 객관적 사물의 두 영역이 있다. 즉 사유기능을 가진 인간의 주체적 마음이 객관적 사물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주자는 내 마음과 사물의 이(理)를 이분하여 비록 내 마음에 중리(衆理)가 갖추어져 있지만 궁리를 통하여 내 마음의 이(理)와 사물의 이(理)가 관통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학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마음의 존양(存養)과 함께 사물의 궁리(窮理)라는 두 가지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주자는 ‘거경과 궁리는 똑같이 중요한 것이며 궁리가 능하면 거경 공부가 날로 진보하고 거경에 능하면 궁리공부가 날로 치밀해진다’고 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거경과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궁리가 실제로는 한 가지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퇴계 또한 거경과 궁리의 상호 관계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경(敬)을 위주로 하여 그 근본을 세우고, 이(理)를 궁구하여 그 지식을 이루고, 자기 몸에 돌이켜 실천하여서 이 세 가지 공부가 서로 병행하여 오래 쌓이면 진지(眞知)에 이른다.

 

이러한 생각은 구체적 사물에서의 강학과 궁리를 배제하여 단지 심체만을 중요시한 왕양명(王陽明)의 심학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왕양명은 ‘심즉리(心卽理)’의 기반 위에서 심이 곧 이(理)이므로 사사물물에 대한 궁리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이에 대하여 퇴계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양명이 다만 외물이 마음에 누가 됨을 염려하여 사람의 떳떳한 마음과 사물의 법칙이 진실되고 지극한 이치가 곧 내 마음의 본래 갖추어 있는 이치이며, 강학하고 궁리하는 것은 곧 본심의 체를 밝히고 본심의 용을 통달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사물물을 일체 쓸어버리고자 하여 모두 본심에 끌어 들여 뒤섞여 말하였으니, 이것이 불교의 견해와 무엇이 다른가?

 

인심이 형기에서 발하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알고 힘쓰지 않아도 스스로 능하게 된다. 의리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않아 배우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힘쓰지 않으면 능할 수 없다.

 

양명은 형기의 하는 바를 가지고 의리의 행위를 밝히려고 하니, 그의 지행의 설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즉 마음 가운데에서 형기에 의한 본능적 행위와 의리에 근거한 윤리적 행위를 구분하고, 의리의 실천은 지속적인 학문연마와 자기 수양에 의하여 도달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여기에서 퇴계는 형기에서 나오는 행동을 ‘하는 바(所爲)’라고 하여 의리에서 나오는 행동인 ‘행위(行)’와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즉 형기에 의한 행동은 단순한 본능적 작용일 뿐 인간의 의지가 들어가 있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리에서 나오는 지행(知行)은 저절로 배워지는 것이 아니므로 학문을 통하여 배워야 하고, 또한 알더라도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므로 꾸준하게 노력하여 실천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리의 지행은 지속적으로 지와 행이 서로 보완되어 병행할 때 가능한 것이므로 퇴계는 이것을 수레의 두 바퀴와 새의 두 날개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3) 실천적 수양과 경

 

퇴계는 󰡔성학십도󰡕의 기본 구조가 경(敬)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경은 위와 아래를 다 통한 것이니 공부를 시작하고 그 공효를 거둠에 있어서 모두 종사하여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자의 말도 그와 같으니 지금 이 십도에도 모두 경으로서 주를 삼은 것입니다.

 

󰡔성학십도󰡕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제1도인 「태극도」에서부터 제5도인 「대학도」까지는 모두 천도에 근본을 둔 것으로 그 공부는 인륜을 밝히고 덕업에 힘쓰도록 한 것이며, 제6도인 「백록동규도」에서 제10도인 「숙흥야매잠도」까지는 인간의 심성에 근원을 둔 것으로 그 요령은 일상생활에 힘쓰고 경외(敬畏)의 태도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즉 천도와 심성의 두 근원이 모두 인간의 주체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경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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