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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 사회와 선비정신(金炳日)
- 등록일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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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 사회와 선비정신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金炳日
☐ 들어가면서
오늘 강연주제를 “21세기 한국 사회와 선비정신”으로 정하였다. 오늘날 우리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서 우리 선조들의 선비정신을 되살려 보고자 하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 데는 몇 가지 동기가 작용했다. 먼저 이 자리에 참석하신 퇴계학 진흥협의회 회원 여러분들께서도 이 주제에 관심이 많으시리라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이따금 혼탁한 세태와 젊은이들의 도에 어긋난 행동을 걱정하면서 가난했지만 어르신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예의가 바로 섰던 어린 시절이 더 좋았었다는 향수에 잠기는 세대이다.
다음으로는 본 협의회의 설립목적과도 관련되어 있다. 본 협의회는 퇴계학연구원과 국제퇴계학회의 연구를 후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퇴계 선생과 그를 계승한 선현들의 참다운 선비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확산시키려는 목적도 지니고 있다.
끝으로 박약회와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등 유관기관에서 현재 추진 중인 활동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 보았으면 한다. 수년전부터 박약회에서는 예절 바른 자녀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교육기관 및 각 지부 등과 협조하여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선비 수련원에서는 도산서원과 인근의 시설들을 활용하여 학생, 학부모, 교사, 공직자 및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옛 선비들의 생활을 체험시켜 선비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이 주제를 정하였으나 식견과 체험 모두 부족하기 때문에 과연 알맹이 있는 내용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널리 양해하고 들어주면 감사하겠다.
1. 오늘 우리사회의 빛과 그늘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 물질적인 삶은 풍요로워졌다. 1960년대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이제는 중진국을 넘어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단계에 까지 왔다. 개인생활도 몰라보게 향상되었다.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옛날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옷을 사면서 브랜드를 따지고 넘치는 영양으로 인해 다이어트 산업이 활개를 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진전되었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는 우리나라의 선진화이다.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당연한 목표이다. 그러나 선진화는 물질적 풍요와 정치의 민주화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국민들의 「정신적 선진화」가 뒤따라 주어야한다. 우리의 도덕과 윤리수준이 선진국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비리와 도덕적 해이를 꼬집는 기사가 매일같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제 잇속만 생각하는 모리배가 불량식품, 가짜상표로 폭리를 취하면서 살고 있다. 도덕적 해이는 특정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산적되어있다. 동료를 배려하기보다 불공정한 방법으로 경쟁에서 이기려는 직장인, 경제적 약자를 울리는 힘센 사람, 줄서기와 주정차와 같은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 시민,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자란 청소년들의 탈선과 비행은 우리를 더욱 걱정스럽게 한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현재가 어렵다면 미래라도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특히, 청소년 아동문제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 와있다. 학생이 선생을 구타하는 것은 뉴스거리도 못 될 만큼 학교폭력이 위험수위에 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은 성적을 비관해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이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이런 교육풍토가 싫다고 너나 할 것 없이 조기유학을 떠나고 있다.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고 있다.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고 다 되지 않는다. 미국 유학 다녀온 아들이 돈 때문에 직계존속을 살해했다는 기사를 보고서 우리 모두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 청소년 조사연구소에서 실시한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의 고등학생들의 부(富)에 관한 의식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답변한 학생이 다른 나라는 20~30%수준인데 비해 우리나라 학생은 50%가 넘었다. 우리나라 학생의 23%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무방하다고 답변하였다. 다른 나라 학생보다 2~3배나 높은 수치다. 무엇을 하더라도 돈만 모으면 된다는 물질만능주의가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훨씬 더한 것이다.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도 많고, 돈을 벌기 위한 방법이 정당한 것이라야 한다.
또 국가 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안위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한국청소년 개발원이 최근 한, 중, 일 3개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전쟁이 나면 앞장서 싸우겠다는 청소년이 일본 41%,중국 14.4%인 데 비해 우리 청소년들은 10.2%에 불과하고 외국으로 피하겠다는 답은 반대로 일본 1.7%, 중국 2.3% 에 비해 우리는 10.4%나 나왔다.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 아동들의 도덕성과 가치관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동안 우리자녀에 대한 교육이 사람답게 키우는 인성교육보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일등주의 가치관을 강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한 둘만 낳아 왕자, 공주처럼 길렀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이고 예의 없는 아이가 되기 쉽다. 남을 앞서고 이기겠다는 생각뿐이다. 이 세상도 부모도 모두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등주의 폐해는 참으로 위험하다. 가정을 결딴낼 뿐만 아니라 사회도 가치가 전도되어 온존할 수 없게 만든다. 앞서본 청소년 문제는 거의 일등주의에서 연유한다고 본다. 일등주의를 초래한 책임은 부모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몫이다. 부모세대는 경제주역으로 뛰느라고 자녀들의 가정교육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자녀들에게는 오히려 무절제하고 물질만능의 사고를 갖도록 일조한 측면도 있다. 또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사회의 급속한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국민의 대다수가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살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동족부락에서 대가족이 함께 살면서 집집마다 마을마다 덕망이 있는 어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도시로 나온 부부와 자녀들로 이루어진 핵가족 가정에서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자녀를 가르치는 역할은 일터로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맡게 되었다. 예전 어른들이 가르치던 남을 배려하는 덕(德) 우선의 인성교육이 밀려나고 그 자리는 학업성적을 높이기 위한 자녀들의 지적능력 배양이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금의 방식으로 중진국은 가능했다. 선진국은 선진국수준의 도덕과 윤리가 갖추어져있다. 그러므로 선진국이 되려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개선돼야 한다. 20세기 들어와서 일본이나 아일랜드 정도를 제외하고 100년 넘게 새로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가 없다고 한다. 그만큼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2. 전통시대의 우리모습과 선비정신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물질적으로 풍족한 나라는 아니었다. 그러나 예의와 염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웃나라로부터 「동방예의지국」, 「군자의 나라」 라고 칭송 받기도 했다. 왕조도 세워지면 500년 이상 지속했다. 우리시대와 가장 가까운 조선왕조도 500년 이상 지속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장수 국가였다. 그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조선은 문치국가이므로 무력이 센 나라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공권력을 가진 관료가 힘으로 백성을 장악하고 통치하지도 못했다. 민란이 자주 일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다. 마을마다 고을마다 가르침을 주고 이끌어 주는 존경받는 선비가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몸을 닦고 솔선수범 하였기에 백성들이 교화되어 따랐다. 나라 전체의 관점에서도 그러한 역할을 하는 큰 선비가 있었다. 조선은 이처럼 선비가 백성을 이끌어 나가는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선비는 누구인가? 국어사전에는 “선비는 학덕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는 사람”으로 풀이되어 있으나 그렇게 좁은 의미로 쓸 일은 아니다. 벼슬길에 나아갔다고 해서 퇴계나 율곡 같은 대 유학자를 선비의 반열에서 제외시킬 수 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조선시대의 선비는 양반, 사대부 중에서 일생동안 도덕적 원칙을 추구하며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공부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치중되었다. 자기 자신부터 치열하게 갈고 닦는 수기(修己)를 하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이웃과 백성을 감화 시키는 치인(治人)의 단계로 나아갔다. 어릴 때부터 기본적인 행동규범을 엄격하게 배웠다. 자고난 이부자리부터 스스로 개어 올리고 어른의 부르심에는 즉각 대답하고 쫓아가 가르침을 받고 손님이 오면 나아가 공손히 맞이하여 자리에 모시는 등 일상생활에서의 예절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난 후 비로소 학문에 나아갈 수 있었다. 요즈음의 성적우선의 자녀교육과는 출발부터 판이했다. 그런 다음 세상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기위해 문, 사, 철을 공부하면서 메마르기 쉬운 학자생활에 윤기를 더하기 위해 시, 서, 화를 익혀 나갔다. 그들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인간적인 참 선비를 목표로 평생 동안 치열하게 노력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의 선비상이 형성되었다. 선비는 바른 마음과 몸가짐을 갖춘 교양 있는 인품의 소유자이며 이익보다 의로움을 우선하는 의리정신에 투철한 사람이었다. 또 일생동안 공부하고 세상을 위해 이롭게 하려는 학덕을 겸한 인격자인 동시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공론의 주도자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그들의 나라 조선을 유교적 이상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 먼저 조선의 역사를 의리에 입각하여 재정리 하였다. 정몽주, 사육신, 조광조는 역적으로 몰려 죽어간 현실정치의 패자들이었지만 선비들은 의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을 현실정치의 승자인 개국공신, 훈구대신보다 훨씬 높이 평가하며 사표로 추앙하였다.
한편 조선을 유교국가로 분명히 하기 위해 최고 통치자인 국왕을 유교학인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하루 수차례나 열었던 경연은 신하가 국왕을 가르치는 자리였다. 세계에서 유례가 드믄 일이 조선에서 일어났다. 또 그들의 꿈인 유교적 이상사회인 대동사회(大同社會) 건설을 위해 앞장서 권선징악을 내용으로 하는 향약을 실시했다. 자기뿐 아니라 이웃도 교화시켜 동참하고자 했다.
그리고 국가가 위기에 부닥치면 분연이 일어나 맞서고 때로는 목숨까지 바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도망치는 관군과는 달리 여기저기서 글 읽던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려고 하였다. 곽재우, 조헌, 고경명 같은 의병장은 모두 뛰어난 선비들이었다. 이러한 선비정신은 조선말기 외세침략과 국권상실 시기에도 변하지 않고 이어졌다. 외세가 밀려오던 초기에는 위정척사를 부르짖으며 우리의 전통을 고수하고 외국문물 도입을 반대하는 등 세상 돌아가는 큰 흐름에 어두운 면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외세 침략이 현실화 되면서 그들은 의롭지 못한 현실을 타개하기위해 용기 있게 나섰다. 의병활동을 치열하게 전개하였고, 역부족 하여 국권을 상실하게 되자 자결 순국 하는 절개를 보여 주기도 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 만주등지로 고행의 길을 떠났다. 이처럼 나라가 가장 어려울 때 선비들은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조선시대 유학이 발달하였던 안동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이 많다. 안동독립기념관 정문 앞 비석에 1,000명 남짓한 이 지역 독립운동 참가자들의 명단이 새겨져있다. 이 가운데 310명이 국가가 인정한 독립유공자이다. 우리나라 전체 독립유공자가 약11,000명 정도 된다니 시 군 별 평균은 30명 내외가 될 것이다. 안동지역의 국가독립유공자는 전국 평균보다 무려 10배가 넘는다. 그런데 안동지역 독립유공자는 대부분이 유학자요, 선비들이라는 사실이다. 불과 1세기 전까지만 해고 우리의 선비들은 배운 대로 나라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선비정신이 그들로 하여금 불의를 보고 못 본체 할 수 없게 하였다. 오늘날의 지식인이 보여주고 있는 행동의 궤적과는 현격한 차이가 느껴진다.
3. 전통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선진국과의 차이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하여 높게 평가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짙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한다면 꼭 배우고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우리 역사는 좌절과 치욕으로 얼룩진 역사이며 우리전통문화는 선진국의 그것에 비해 보잘 것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잊고 싶은 역사요, 버려야 할 고리타분한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수세기 동안 우리 역사를 이끌어 온 선비와 그들의 정신도 같은 맥락에서 인식되어 왔다.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선진화,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면 되었지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 하고 있는 국민이 지금도 많이 있다고 본다. 왜 이렇게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를 비하하게 되었을까?
그 첫 출발은 1세기 전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략 과정에서 그들이 굴레 씌운 식민사관의 영향이었다. 그들은 조선의 식민통치를 정당화 하기위해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왜곡시켰다. 당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중국을 상전처럼 사대주의로서 섬기면서 지배계층은 백성을 착취하니 나라가 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을 이웃나라로서 보호하지 않을 수 없어 합병하였다고 그럴 듯하게 둘러 대면서 조선 사람들을 세뇌시켰다. 이 과정에서 선비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리공담과 사색당쟁으로 나라를 망치게 한 무능하고 파렴치한 존재들로 왜곡 폄하시켜 버렸다. 스스로 지도력을 상실한 당시 선비들로서는 이를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방 후 물밀 듯이 밀려온 외래 문물에 대한 무분별한 수용은 우리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더 악화 시켰다고 보겠다. 나라 발전에 걸림돌로 여겨져 제거와 배척대상이 되어갔다. 최근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도시로의 이동은 물질 만능의 사조로 우리를 바꾸어갔다. 이 과정에서 실리보다 의리와 명분을 중히 여기면서 청빈하게 살아간 선비정신은 세상 물정 어두운 고리타분한 정신으로 자리 매김 되어 갔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진국에 걸맞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어디서 가져올 수 있을까?
선진국은 어떤가?
선진국들은 대체로 그들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형성된 가치관을 이어 받아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기나라의 역사와 가치관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전통이 강한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를 보면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화와 도덕성을 확보하고 있다. 봉건시대 지배계층에서 생겨난 기사도 정신은 시민사회로 이행되면서 상류사회의 책임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외국과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왕자나 귀족가문의 자녀들이 앞장서서 군에 입대하는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얼마 전 아프간 전투에 몰래 참전하였던 영국 왕자의 모습이 이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앞장서 싸우겠다고 답변한 우리나라 청소년이 10%에 불과한 사실과 우리 지도층 자제들의 병역사례들과 대조가 된다. 미국은 서부개척자들의 프론티어 정신을 독특한 가치관으로 삼고 있다. 그들은 아무 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모험을 통해 자기 것을 차지하였다. 이 정신이 현대에 와서는 벤처기업의 형태로 등장한다. 실력이 있는 자는 상대를 누르고 가능한 많이 획득하고 자기 이익을 최대한 챙긴다. 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므로 개인적인 인생관이 바탕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성취한 후 그 성취를 사회와 공유한다. 미국의 갑부는 예외 없이 거액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떠난다. 록펠러와 카네기가 그랬고 빌게이츠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일본은 사무라이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봉건시대 주군에게 충성하고 명예롭게 죽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명치유신이후 근대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정신은 단절되지 않고 계승되어 일본이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본다. 태평양 전쟁말기 목숨을 던진 가미가제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신이 회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기개인의 욕망이나 이해보다는 회사의 이익과 발전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보람으로 여기는 일본회사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일본인들이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장본인이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 새롭게 요구되는 도덕과 윤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우리 역사와 전통에서 실마리를 찾는다면 선비정신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4. 선진사회 덕목으로서 선비정신의 계승 발전 방안
선진국은 경제성장과 정치 민주화만으로 달성 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걸맞은 국민들의 도덕성과 윤리를 갖추어야 한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구미선진국과 일본은 여타 중, 후진국들과 다른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바탕을 보면 그 나라의 역사 발전과정에서 형성된 정신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유럽의 기사도 정신이나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의 선비정신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조선시대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선비정신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측면도 있으며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선비정신의 부정적인 면 중에는 조선조 선비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모순도 있겠고 선비의 탈을 썼던 속유(俗儒) 부유(腐儒)들의 부정한 행위가 마치 선비의 일반적 행위처럼 잘못 투영된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안목으로 누가 보아도 옳다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긍정적인 면과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부정적인 면으로 구분해 보자. 그러고 나서 옳은 것은 이어받아 적극 활용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리면 될 것이다.
먼저, 선비 정신의 긍정적인 면으로 오늘날 본받아야 하는 것은 첫째, 올바른 마음과 몸가짐이다. 의롭지 못한 부귀는 탐내지 않고 불의에는 목숨을 걸고 항거 하였다. 예의 못지않게 염치를 소중히 여기고 청렴을 숭상하였다. 둘째, 공론을 주도한 선비의 기개이다. 벼슬에 나아가거나 물러나 초야에 있거나 옳고 그름을 분명히 밝히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셋째, 고결한 인격자가 되려고 일생동안 학문을 익히고 세상을 위해 실천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공부한 다음 배운 것을 세상을 위해 이롭게 하려했다. 그래서 벼슬도 감당할 수 있을 때 나아가고 감당 할 수 없거나 뜻을 관철할 수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당연했다.
넷째, 국가가 어려울 때를 만나면 목숨을 걸고 나가 싸우는 용기이다. 임진왜란 때나 구한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나 의병을 일으킨 지도급 인사는 거의 명망 있는 선비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첫째, 신분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유교의 치자, 피치자 구분의 영향으로 양인과 천인, 적서의 신분차별을 분명히 하였다. 둘째, 학문만을 중히 하고 무를 낮추어 보아 국력이 약화되어 간 것이다.
셋째, 농. 공. 상을 천시하여 산업능력을 저하시킨 점이다.
넷째, 지나친 복고주의로 진취성을 결하게 된 사실 등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성을 감안하더라도 오늘날 결코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것이 속유 부유 등의 비리 비행과 함께 조선시대 선비를 혹평하는 논거가 되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선비문화로 인해 조선왕조는 제국주의 열강에 비해 경제력과 군사력의 약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고 끝내는 일제의 침탈로 국권을 잃게 되었던 점도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뼈저리게 아픈 역사는 도리어 우리에게 반성과 분발을 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 신분 차별 없는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이어졌고, 국방강화 노력은 세계10위의 군사력 보유국가로, 산업화를 통한 경제개발 노력은 GDP 세계 13위 국가로 만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은 진취적이며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부정적인 측면은 이미 무너졌거나 지나간 과거에 불과 한 것이 되어 모두 역사 속에 묻혀 버렸고. 지금에 와서 되살릴 수도 없다. 이제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반드시 지켜야 할 긍정적인 선비정신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일만 남았다.
우리의 귀중한 정신유산인 선비정신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킬 것인가 ?
먼저 나부터 주변의 가까운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본다. 물론 국가가 해야 할 몫이 가장 크고 영향력도 그러하다. 국가정책에 반영되도록 뜻을 모아나가야 한다. 그러나 큰일 일수록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변수가 많다.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우리는 지도층인사요, 지식인이다. 오늘날 선비다. 그 옛날 선비는 가장 먼저 자기를 닦고 솔선수범을 하면서 주위를 교화시켜 나갔다. 우리도 같은 길을 가면된다. 적수성천(滴水成川)이라 하지 않는가?
먼저 수신(修身)하는 것이다. 책도 읽고 월례회와 같은 모임에도 적극참여하고 박약회나 도산서원 선비문화 수련원에도 가보자. 배울 수도 있고 가르쳐 줄 수도 있다. 그러면 자기 하는 일에 더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되고 가족이나 주위 친지로부터 점차 관심과 동조를 받게 될 것이다.
다음은 제가(齊家)이다. 가족과 자주 대화하고 손자들의 인성교육도 맡아서 해 준다. 종친회에 아들 손자도 데려가고, 퇴계학진흥협의회에 아들도 입회시키면 금상첨화다. 같은 맥락에서 친지, 이웃과도 넓혀 나간다. 그러는 사이 우리주변으로부터 선비정신이 되살아나서 점차 사회로 확산 되어 갈 것이다.
우리 퇴계학진흥협의회도 지금까지의 존현(尊賢)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선비정신이 오늘날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역할을 하면 좋겠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들으려면 스스로만 좋다고 즐기는 것보다 자기도 좋고 남들도 가치를 인정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사료되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