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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 儒家知識人의 現實對應 - 君子, 和而不同(김시업)
- 등록일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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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 儒家知識人의 現實對應 - 君子, 和而不同
김시업(성균관대학교 교수)
Ⅰ. 들어가며 ― 문제 제기
° ‘근대 유가 지식인의 현실 대응’ ― 표제어의 범위 ° 유가의 독립운동사(의병, 계몽운동, 3․1운동과 파리장서, 해내외 독립운동 등)는 그저 연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인가? 그것은 갈등, 대립, 충돌과 해소의 심각한 양상을 내포한 역사적 현실운동으로서 전개 발전해 왔다. ° 의병 세력과 애국계몽운동 간의 대립 충돌의 사례 - 柳寅植이 拓菴 문하에서 파문됨 - 협동학교를 의병세력이 습격함(‘弔協東學校’ 1910년 7월 ≪황성신문≫) - 현실인식과 세계관, 그 지향점의 엄청난 차이 의병―척사의식, 복벽주의, 왕조국가(반봉건․반제국주의 성격도 일부 있으나) 애국계몽운동―혁명적 개화, 반봉건반제국주의, 공화주의, 근대국민국가 건설 ° 儒家 지식인은 이러한 갈등 대립 등 현실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소(하고자 노력)해 왔는가? 오늘 되새겨 볼 그 기본 정신과 태도는 무엇인가? ° ‘和而不同’(“君子는 和而不同하고 小人은 同而不和하다”―論語 「子路」) — 군자는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지만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기를 구하지는 않는다. 소인은 이해가 같다면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기를 구하지만 서로 진심으로 조화롭지는 못하다.― ‘先憂後樂’(“先天下之憂而憂하고 後天下之樂而樂이라”―范仲淹 岳陽樓記) — (군자, 선비는) 천하의 근심을 남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남 늦게 즐긴다.— Ⅱ. 儒家 독립운동의 몇 국면과 그 성격
1. 의병 전쟁
° 전기 의병(1894~96) — 갑오왜란․단발령 — 갑오의병(안동․예안 유림이 시작), 을미의병(전국적 유림, 동학과 농민이 합류) ° 중기 의병(1904~07) — 을사늑약 — 농민 의병, 전국적 유림 의병, 일부 계몽운동으로 노선 변화. 반봉건 국가의식․반제국주의 의식 성장 ° 후기 의병(1907 이후~ ) — 군대 해산, 의병 가담 — 대규모 의병, 전국이 의병 전쟁장화(1909년 까지) — 독립군으로 전환(~1915), 산간 잠적(~1918) ° 旺山 許蔿 — 판사 출신. 13도 연합창의진 이끌고 서울 진공(1908). 일제에 대한 선전 포고. 각국 영사관에 알림. 동대문 밖 전투 실패.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사형 당함. ° 척사․근왕 이념 → 국가․국민 의식, 민족의식으로 전이 → (해외) → 계몽주의 근대사상과 합류, 독립군 기지로
2. 애국계몽운동과 협동학교
° 東山 柳寅植이 안동에서 개화 계몽주의 제창(1904). 스승 金道和, 아버지 柳必永의 반대 불구. ° 협동학교 설립(1907)— 金東三 등과 힘을 모아 동부 7개 면이 협력. 천전리에. 북부지방에서는 유일한 중등학교 세움. 안동 향중 원로들(의병 지도자 등)의 반대로 어려움 겪음. 李相龍이 계몽운동으로 전환, 대한협회 안동지회 결성(1908)하고, 그의 처남 金大洛이 찬동하여 저택 제공. 호계서원 및 천전 의성 김문을 비롯한 여러 문중 재산 동원, 내앞 김문의 종손(金秉植)이 교장. 대한협회 안동지회와 서울의 신민회가 지원. 신민회 교사 파견. ° 협동학교가 보수 의병의 습격을 받음(1910. 7. 18) 신민회가 파견한 김기수ㆍ안상덕 등 교사 3인 피살. 언론 보도, 의연금 모금, 보수 유림 성토 등 전국이 들끓다. ° 복벽주의 척사 의병과 공화주의 개화 계몽운동의 충돌과 不和. ° 그러나 협동학교는 이를 극복하고 안동 향중의 의병들이 개화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계속(1919 폐교 당할 때까지)했다는 점, 그래서 안동지역 계몽운동의 요람이며 독립운동의 산실이 되었으며, 의병항쟁과 계몽운동 두 계열이 합류하면서 해외 망명 독립군 기지 개척과 3․1만세운동으로 발전하였다는 점 등이 역사의 대열 중심에서 빛나고 있다.
3. 3․1운동과 파리장서
° 기미독립선언서에 유림이 참가하지 못한 까닭의 일단. 민족 대표 33인의 성격(천도교, 기독교, 불교 지도자 대개가 친일 행각에 빠진 인물) ° 卍海 한용운의 역할 ° 전국적 만세운동(민중화)으로 확산되면서 근대적 민족적 자각의 대역사로 승화됨 ° 유림의 파리장서 — 서울의 지방 출신 중진 유림들 중심으로 거사 시작(金昌淑(성주), 金丁鎬(성주), 李中業(안동) 등) 내용이 3․1운동의 중심 이념인 正義와 人道에 바탕을 둔 自主 선언. 郭鍾錫의 점검을 거친 영남의 장서와 金福漢을 종장으로 한 호서 유림의 장서가 서울에서 통합됨(3월 17일 경). 김창숙이 상해로 가져감. 제1차 유림단 사건 발발. — 파리장서의 의의 보수 유림 田愚를 비롯한 일부가 빠졌으나, 전국 유림이 뜻을 모음. 의병과 계몽운동 계열이 국내에서 하나로 합류함. 유림의 파리장서와 만세운동 참여로 3․1운동이 전 민족운동으로 완성됨. “儒者의 道를 자부하면서 국가 흥망의 현실과는 상관 없다니 그 도는 과연 무슨 도인가?”(심산 김창숙이 간재 전우를 두고 한 말) 유교 민족주의, 민족주의 유학으로 통합 ° 제2차 유림단 사건(1926) — 심산이 독립운동 기지 개척 위해 국내 잠입, 모금 활동. 면우집 간행비 등 모금을 강행했으나 태부족. 8개월 간 활동 후 탈출. 유림 600여 명 검거됨. — 의열단 나석주 의사를 파견. 동양척식회사․식산은행 파괴 — 국내 유림 지주들의 모금은 줄었으나 8개월 간 활동 비밀은 유지. 유가의 신의를 지킴.
4. 좌우 합작 운동 — 신간회 결성(1927)
° 신간회의 안동․영주․봉화․영양지회 등은 유인식을 비롯한 유림이 주도함. 좌우합작, 통일전선운동을 조직. 민중 속으로 … 민중이 되어 …. 친일 폐단 많은 향교 철폐운동 전개.
Ⅲ. 士大夫와 愛民
° “讀書曰 士요 從政爲大夫라” 士大夫란 독서층이면서 관인층이다(出과 處). 중소지주적 경제 기반과 의식을 가진다. 修己(爲己之學)과 治人(愛民의식․訓民정책)을 지향한다. 義와 道를 추구한다. ° 조선 중․후기의 현실 집성촌(농경, 종통주의, 유교 가례) 형성 향교(지방 관학)의 쇠퇴, 서원(사학)의 융성 향약(동규)의 발달 ° ‘愛民’에서 ‘민중 속으로’
帶雨鋤禾伏畝中 비를 맞으며 밭이랑에 엎드려 김을 매니 形容醜黑豈人容 검고 추악한 몰골 사람의 형용이 아니구려 王孫公子休輕侮 왕손공자(王孫公子)여, 나를 업신여기지 마라 富貴豪奢出自儂 부귀 호사도 모두 나로부터 나오느니 (李奎報, 「代農夫吟」 東國李相國集)
突丌坡亭此夜寒 우뚝한 서파정 이 밤이 차구나 霜擬紙壁雪堆欄 서리는 벽지에 엉키고 눈은 난간에 쌓였도다. 東隣却羨農家子 동쪽 이웃 농사꾼의 아들이 오히려 부러워라 自手擔薪暖養親 손수 나무해 따뜻이 어버이를 모시네. 板屋風嗚此夜寒 판자집 바람소리 이 밤이 차구나 莊嚴奇氣薄秋旻 장엄하고 기이한 기운 가을 하늘에 치받는데 定知愛國靑年血 정녕 알겠노라 애국 청년들의 피가 不作囹圄凍餒魂 결코 옥살이에 얼어 죽고 굶어 죽는 혼이 되지 않으리
海外同胞此夜寒 해외동포 생각하니 이 밤이 차구나 六洲風雨張空拳 육대주 비바람에 맨주먹 휘두르며 由來時勢英雄造 영웅이 시세를 만드노니 民國元年朝日鮮 민국 원년에 조선의 새 아침 빛나누나
薊雪遼風此夜寒 중국 눈보라 요동 드센 바람 이 밤이 차구나 殊邦泣血幾多年 이역 땅 피울음 그 몇 해나 흘렸던가 遼憐吾友二三子 멀리서 그리노니 나의 동지들 聚首窮廬苦不眠 궁한 집 머리 맞대고 괴로움에 잠 못 들겠네
學界諸君此夜寒 單衾典却突無煙 喫辛耐苦何須說 祖國江山擔爾肩
社會諸公此夜寒 언론계 여러분 이 밤이 차구나 靑燈硯室冷凄然 청등 연실은 차갑고 쓸쓸한데 床頭噴血抽孤竹 책상머리 피 토하듯 한 자루 붓 들어 流麗文章喚國民 유려한 문장으로 국민을 일깨우네
商業諸君此夜寒 曉街呼酒囊無錢 利窟外人籠盡去 歲闌獨座守空廛
勞動諸君此夜寒 氷程雪海走如丸 四千餘載神明族 何忍呻吟異種鞭 玄陸陰凌此夜寒 대륙의 음산한 기운 이 밤이 차구나 東鮮無處不愁顔 이 땅 어느 곳엔들 근심없는 이 있을까 聞說多金候爵里 듣건대 돈 많은 친일 귀족의 마을엔 炭爐毛帳煖如春 난로 불 털 휘장에 봄같이 따뜻하다지
莫恨窮廬此夜寒 地中陽復已經旬 次第春風煽大地 死根枯木向榮欣 (柳寅植, 「此夜寒十絶」 東山集)
— 고려 후기(13세기) 사대부 계급 형성기의 愛民詩와 근대(20세기) 혁신적 유가 지식인의 민중 민족주의 시다. 東山은 사대부적 애민의식을 떨치고 민중 현실로 들어갔다.
Ⅳ. 열린 知性
° 한국의 민족주의 — 종족 민족주의(혈통․인종)․저항 민족주의 담론 유가의 독립운동 — 혈연․연비, 학맥․지역 — 민족주의․민족운동 혈연․학맥 유가 공동체— 종교 공동체와는 다르지만, 시민적․민주적 공동체(사회)는 못 됨. ° 오늘 다문화, 개방․세계화의 시대에 어떻게 종족․혈연적 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적 제도로서의 인간적(보편적) 민족주의(정체성)을 적용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의 문제. — 우리 역사․생활 문화에서 가능한 보편 원리를 발굴하여 확인․소통․발전시켜야. — 세계화는 인간의 창의성과 다원주의를 존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세계화는 민족문화(자아)의 세계적 조화를 의미하는 것일 터이다. ° 앞에서 ‘君子는 和而不同’이라 했는 바, 유가의 독립운동(근대 대응) 과정에서 ‘不和’와 ‘和’를 여러 양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음. — 의병과 계몽운동이 不和에서 和로, 협동학교 유림들은 상동교회(서울)를 중심으로 한 新民會와 화합하여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함께 개척하였으며, 파리장서와 3․1운동으로 유림이 화합하여 유교와 민족주의의 통합을 보았으며, 신간회 활동으로 통일전선운동의 중심에 서기도 함. — 和 — 다른 것들의 조화 — 다양성 — 공존(自他의) 同 — 다름이 없는 같음 — 한 가지 되기 — 他의 自己化 — 차이를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인식과 태도 — (義者) — 같기만을 요구하는 태도 — (利者)
— 퇴계 선생은 일찍이 “不能舍己從人이 學者之大病이니 天下之義理가 無窮한데 豈可是己而非人이리오.”(退溪集) 하였다. ‘舍己從人’은 곧 학문의 태도이자 ‘和’로 가는 길이다. ° 또 ‘先憂後樂’이라 하였다. 군자․선비는 모름지기 나라와 민족(공동체)을 위하여 진심으로 근심하고 봉사하는 지식인이 되어야 하는 바, ‘선우후락’의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독립운동의 선두에 서겠는가. 여기에는 時義(宜)와 時中의 정신이 절실하다. ° 오늘의 ‘知性’은 ‘道義의 지식인’, 책임과 봉사정신을 가진 참된 지식인을 말한다. 다문화 현실, 세계로 개방된 시대에 先人들의 和而不同의 태도와 先憂後樂의 정신을 보편적 인류 지성으로 체현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