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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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의 自己革新(이동건)
- 등록일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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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퇴계선생)의 自己革新(자기혁신)
몇년전에 일본 후꾸오까에 있는 황실 아악원 정원에 세워진 「퇴계선생 헌창비」 제막식에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수상이었던 호소까와의 부인인 호소까와 게이꼬가 회장으로 있는 「퇴계선생에게서 배우는 학회」에서 주관을 하여 세운 비석문에는 일본의 유명한 18세기 때 실학자 오츠카 타이야 「大塚退野(대총퇴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오늘날 일본이 처한 국가적 난제들을 퇴계선생의 가르침 속에서 찾기 위하여 이 비석을 일본 황실 아악원 정원에 세운다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일본 최고의 지성인들이 16세기 조선의 퇴계에게서 무엇을 배울려고 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면서도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퇴계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한국, 일본, 중국뿐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을 비롯한 서구 열강에까지 번져서 세계적으로 확산 일로에 있습니다. 그 좋은일 예로서 하바드 대학의 옌칭 연구소 마이클 칼튼 교수가 영역한 퇴계 선생의 「聖學十圖(성학십도)」가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는 退溪(퇴계)선생의 대표작인 「聖學十圖(성학십도)」에서 몇가지 삶의 지침을 얻고자 합니다. 「聖學十圖(성학십도)」는 퇴계가 68세 때 17세의 어린 나이로 임금이 된 선조를 聖君(성군)으로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 바친 상소문(잠)입니다. 조선왕조사에서 선조 임금의 등극은 훈구척신의 시대가 퇴조하고 士林(사림)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이정표적 사건이었습니다. 퇴계는 이런 전환의 시대에 어린 임금을 위한 정치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서 자신이 평생에 걸쳐서 연구한 성리학의 성과를 열 폭의 그림으로 체계화하여 선조에게 바친 것입니다. 性理學(성리학)에서 聖學(성학)이란 聖人(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이란 뜻인데 성리학을 공부하는 최종목표가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의 정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聖學(성학)은 철학인 동시에 정치학인 셈입니다. 성학십도를 통해본 퇴계의 정치철학은 「이데아」의 왕국을 꿈꾼 플라톤의 哲人政治論(철인정치론)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통찰한 哲人(철인)의 정치를 이상적 모델로 생각했다면, 퇴계는 理(리)를 스스로 체화한 성인의 정치를 이상적 모델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작년에 영남퇴계학연구원 학술 이사회에 참석한 영남대학교의 최재목 교수는 나에게 아주 재미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2003년 중국 영파(寧波)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한 일본 큐슈의 원로 학자가 최교수에게 나는 오랫동안 퇴계선생을 연구해 왔는데 근간에 퇴계의 인격에 감동하였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중국의 공자보다도 퇴계가 더 인간적이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고 고백을 하였다. 퇴계의 손자 안도(安道)가 창양(昌陽)을 낳았을 때 일이다. 안도는 서울 성균관에 유학을 하면서 갓 태어난 창양을 서울로 데려갔는데 안도의 부인 권씨(安東權氏)는 젖이 모자라 아이를 키울 수 없었습니다. 마침 안도는 할아버지 퇴계 댁에 아이를 낳아서 젖을 먹이고 있던 노비(종)가 있음을 알고 그녀를 유모로 보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퇴계는 손자 안도에게 편지를 보내서 “하인의 자식을 죽여서 자기자식을 살리는 것은 참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고 노비를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노비의 자식이라도 똑같은 인간의 자식이니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일본의 그 교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신분이 존재하던 그 시대에 이미 신분의 고하를 초월하여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몸소 실천했던 시대를 앞선 분이다”라는 등 퇴계의 따사로운 인간적인 면모를 더 열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공자의 마굿간에 불이 났는데 공자가 조정에서 돌아와서 사람이 상했느냐를 묻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논어향당편) 그런데 만일 이것이 퇴계의 경우라면 말이 죽었는지 어떤지도 친절하게 물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최재목 교수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오늘날 퇴계에게서 다시 발견해 낼 것은 어쩌면 우리를 감동케 하는 인간적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천리(天理), 리(理)만을 강조한 엄격하고 차갑고 딱딱한 사상가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퇴계를 어떻게 읽어 낼 것인가?’하는 문제는 ‘우리의 관점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라고 말을 맺었습니다. 퇴계가 편집한 「성학십도」의 기본자료는 모두 중국인이 저술한 중국의 지식이며, 이것이 조선의 퇴계라는 인물에 의해 수용되어 새롭게 편집되었다는 것인데 한국적 재집성(再集成)이라는 큰 의미를 갖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조선과 지리적, 문화적, 지적인 풍토를 달리하는 지(知)의 제국이자 중심인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조선에서 재집성된다는 것은 사상에 있어 새로운 중심이 하나 더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식의 산출과 보급이라는 점에서도 단순한 수입으로 미니 중국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 수용과 변용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을 갖는 것이 된다. 오늘날 지방화 시대에 임한 대구.경북에게 퇴계선생이 외부(중앙)문화를 받아들여서 토착화된 지방문화를 재창조해낸 부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중년 이후의 퇴계는 벼슬을 사양하며 고향에 돌아가 제자들을 교육시킬 꿈을 꾸게 된다. 그의 현실도피적 소극성을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지만 그것은 정치중심, 서울중심의 생각입니다. 퇴계의 은퇴는 서울과 중앙정치 무대에서 물러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나아감입니다. 그는 「주자대전」을 철저히 연구하여 주자학이 난세를 극복할 사상적 지침이자 학문적 무기로 조련하였으며, 젊은이들에게 교육을 시킴으로 미래를 기획하였으며, 서원(지방사립대학) 건립운동과 향약운동 등을 통하여 혁신의 터전을 만들어서 지방문화의 창달에 힘을 쏟았습니다. 자기혁신의 길이 실천에 있음을 깨달은 퇴계는 시대문제의 본질이 「인간」에게 있다고 보고 이 시대를 살리는 빛과 희망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으며 실천에 의해 사회는 발전한다고 믿고 가르쳤습니다. 우주, 자연, 인간을 아우르는 주자학의 거대 담론을 “실천적 인간학”의 패러다임으로 재구성을 한 것이 「성학십도」입니다. 이 성학십도는 퇴계자신이 평생에 걸쳐서 이룩한 학문을 집약한 것이며 성리학 사상 조선과 중국의 학설을 망라한 聖學(성학)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학십도가 얼마나 훌륭한 저술인가를 알기 위해서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일본과 미국의 두 저서와 비교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최고의 실학자로 존경받는 오츠카 타이야「大塚退野(대총퇴야)」는 일본 국민 전체의 민족성 개혁을 교육을 통해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쇄국을 해운 일본 국민들을 계몽하고 혁신하는 방법론으로 그가 제시한 것은 ①열심히 배우고 익히고 ② 반드시 배운데로 실천하고 ③ 반성해서 또 실천한다 ④대(代)를 이어 실천하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일본식 「敬(경)」철학으로 완성되어 그의 제자들의 힘으로 명치유신 교육칙어 제정에 근본사상이 되어 현대화된 일본의 성장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이 세계의 열강으로 군림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러한 교육철학과 실천정책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미국 최고의 경영학자로 추앙받는 Edward Daeming은 QC(품질관리)라는 경제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여 생산성 혁신을 주도한 학자로서 경제학에서 경영학을 분리 독립시켜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연 세계적인 경영학자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일본에게 승리한 원인중 하나가 미국이 QC를 채택하여 품질관리와 생산성 혁신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로 굳어 있습니다. 이 QC를 체계화한 데밍 교수의 저서 가운데 PDCA학설이라는 논문이 있는데 그 내용의 골자는 Plan Do Check Action입니다. 이는 자기혁신은 학습계획을 세워서 반드시 실천하고 실천한 뒤 반성해서 또 실천할 때 Inovation이 성취된다는 뜻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맥아더 장군은 데밍 교수를 일본에 초빙하여 QC를 가르쳐서 일본경제의 부흥을 도와주었습니다. 잠시 살펴보아도 미국과 일본의 현대화의 주역인 20세기의 데밍 교수와 18세기의 오츠카 타이야의 경 철학은 그 내용면에서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퇴계는 「성학십도」에서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학십도 서문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습니다. 「思之習之(사지습지), 眞踐履之(진천이지), 反復終始(반복종시)」 깊게 생각하고 잌히고, 반드시 실천하고 이행하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실천하라 16세기의 퇴계, 18세기의 오츠카 타이야, 20세기의 데밍의 학설의 내용이 거의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세상의 진리는 東西古今(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는 점에서 필연으로 보고 싶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자기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만이 진화를 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증명한 좋은 예입니다. 현대의 한국 철학자중 한 사람이 퇴계와 같은 사상을 정리해서 발표하였다고 가정을 해도 대단한 학문적 성취에 분명한데 450년 전의 퇴계가 어린 임금의 교육을 위해 자기개혁의 방법을 상세히 그림으로 정리하여 설명하고 반드시 실천함으로서 훌륭한 임금 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마이클 칼튼 교수의 영역 성학십도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오츠카 타이야가 퇴계선생을 神明(신명)처럼 우러러 받드는데 비해 오늘날 우리들은 퇴계 선생을 천원짜리 지폐에 박재해서 유기한 체 허송세월만 하는 게 아닌지 두렵습니다. 미래의 꿈나무들을 교육하시는 여러 교사님들께서 퇴계선생의 자기혁신(Inovation)과 敬哲學(경철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시고 스스로 실천해 나갈 때 우리 교육계의 미래는 한층 밝아지리라 믿습니다. 한국가의 경쟁력은 교육에 달려 있음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