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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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 위주로 본 공자와 퇴계의 양생술 - 2017년 9월 강연
- 등록일 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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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 위주로 본 공자와 퇴계의 양생술
17-09김언종교수-양생술
인류의 평균연령에 관한 간단한 통계는 다음과 같다. 고대 그리스 시대 19세, 고대 로마시대 25세, 중세 프랑스 혁명 전후 34세, 19세기 말 45세, 21세기 현대 80세 전후. 백세는 시간문제라고 하고 놀랍게도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공자가 살던 시기가 고대 그리스와 겹쳐지므로 중국 춘추시대의 평균연령을 20세 전후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공자의 향년 73세(기원전 551-기원전 479)는 대단한 장수임에 분명하다. 1800년대 전후의 평균연령이 34세라니 퇴계가 살던 16세기는 결코 34세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퇴계의 향년 70세(1501-1570)는 분명 장수에 속한다. 두 분의 장수에는 강의(剛毅)한 정신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식생활을 통한 양생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두 분의 식생활이 어떠했다는 것은 다행히도 믿을 수 있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공자의 식생활에 관한 기본 자료는 《논어· 향당》이고 퇴계의 식생활에 관한 기본 자료는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도산전서본)이다.
1) 공자의 경우
齊必變食(재필변식) : “재계할 때 반드시 음식을 가려 먹었다.” 여기서의 ‘齊’는 ‘재’라 읽고 재계(齋戒)의 의미를 가진다. 각종 제사를 치르기 전에 행하는 재계 기간 동안 술 고기는 물론이고 자극적 채소인 파, 마늘, 부추, 염교, 달래를 먹지 않는다.
居必變坐(거필변좌) : “거주하는 장소도 반드시 옮긴다.” 재계 기간 동안 거처를 옮긴다는 말인데, 기혼자의 경우, 아내와 평소에 함께 자는 연침(燕寢)에서 자지 않고 외침(外寢)이라 부르기도 하는 정침(正寢)으로 거처를 옮겨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食不厭精(사불염정), 膾不厭細(회불염세) : 밥은 많이 도정한 것 일수록 즐겨 먹었고, 회는 가늘게 썬 것 일수록 즐겨 먹었다. 현미(玄米) 보다는 칠분도(七分搗)를 좋아하였다는 것이고 육회(肉膾)는 가늘게 썬 것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食饐而餲(사에이애), 魚餒而肉敗(어뇌이육패), 不食(불식) : 밥이 쉰 기운이 있거나, 물고기가 상한 듯하거나 고기가 변질된 것은 먹지 않았다. 오늘날의 사정으로는 당연한 일이나 육류가 극히 귀했던 고대에는 확실히 부패한 경우가 아니면 조리해서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약간이라도 변하면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보존 유효기일이 하루만 지나도 폐기처분 하는 경우와 같다고 하겠다.
色惡不食(색악불식). 臭惡不食(취악불식). 失飪不食(실임불식). 不時不食(불ㅅl불식) : (음식의) 색깔이 나쁘면 먹지 않았다. 냄새가 나빠도 먹지 않았다. 덜 익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 제철 아닌 음식을 먹지 않았다. 정해진 식사시간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규칙적 식사)
割不正不食(할부정불식). 不得其醬不食(부득기장불식) : 고기를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으로 방정하게 잘라 놓지 않은 것은 먹지 않았다. 고기를 먹을 때 그 고기에 알맞은 장(醬) 즉, 젓갈 간장 식초 같은 알맞은 소스(sauce)가 없으면 먹지 않았다.
肉雖多(육수다), 不使勝食氣(불사승사기) : 밥상에 고기가 많을 경우에도 밥보다 고기를 많이 먹지는 않았다.
唯酒無量(유주무량), 不及亂(불급란) : 술은 양을 정해놓고 마시지는 않았지만 마실 경우 취할 정도로 마시지 주사(酒邪)를 부릴 정도까지 마시진 않았다.
沽酒市脯不食(고주시포불식) : 시장에서 사 온 술과 육포를 먹지 않았다.
不撤薑食(불철강식) : 생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생강은 정신을 맑게 하고 더러운 기운을 없애준다고 여겨 장복함. 果珍李柰, 菜重芥薑.
不多食(부다식) :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다.
食不語(식불어), 寢不言(침불언). 식사 중에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康子饋藥(강자궤약), 拜而受之曰(배이수지왈), “丘未達(구미달), 不敢嘗(불감상).” : 계강자(공자 노년기의 노나라 실권자)가 약을 보내오자 절하고 받고는 “저는 이 약의 약성을 모르므로 먹지는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2) 퇴계의 경우
○ 先生對客飮啖, 不聞匙箸之聲. 其飮食之節, 每食不過數三器, 暑月只脯而已.[嘗侍食陶山, 盤中只有茄菜·菁根·海藿, 無餘物矣. (선생께서 손님과 음식을 잡수실 때 수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음식을 잡수심에 매끼에 세 가지 반찬을 넘지 않았는데 여름엔 육포 한가지일 뿐이었다.) 〔일찍이 도산에서 선생을 모시고 식사한 적이 있는데 상위에는 가지무침, 삶은 무뿌리, 미역무침이 있을 뿐이었다.〕 〔金誠一의 기록]
○ 先生嘗入京寓西城內, 今左相權公[名轍]來見焉. 先生具飯待之, 淡饌薄味, 不可食, 而先生若啖珍味, 少無難意. 權公竟不能下箸. 退謂人曰: “從前誤養口體, 到此, 甚可愧也. 언젠가 선생이 한양의 서쪽 어느 동네에 거처하실 때, 지금의 좌의정 권철 공이 인사드리러 왔다. 선생이 식사 대접을 했는데 담박한 반찬에다 별 맛이 없었으므로 권공이 먹을 수 없었지만 선생은 조금도 거리낌 없이 맛있게 잡수셨다. 끝내 음식을 먹지 못한 권공이 물러나 사람들에게 ”내가 전에 입과 배를 잘못 길들였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 정말 부끄럽다.” 라고 하였다. [禹性傳의 기록]
○ 先生嘗曰: “我眞福薄之人. 啖厚味則氣如痞滯不安, 必啖苦淡然後, 方利腸胃.”(선생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길 “나는 참으로 박복한 사람이다. 맛있다는 걸 먹으면 체한 듯한 기분이 들어 편치 못하고 쓰고 담박한 것을 먹은 다음에야 속이 편하다.” 라고 하였다.) [金誠一의 기록]
○ 先生飮酒未嘗至醉, 微酡而止. 其接待賓客, 隨量勸之, 稱其情款焉.(선생께서는 술을 마실 때 취토록 마신 적이 없고 얼굴이 불그레해지면 그만 마셨다. 빈객을 접대할 때는 상대방의 주량에 따라 술을 권하셨는데 화기로운 분위기에 알맞게 하셨다.) [金誠一의 기록]
◎ 〈酒誡〉 贈金應順. (酒隱 金命元, 1534-1602)
嗟哉麴糱, 오호라 술이여
禍人之酷. 사람을 해침이 심하기도 하구나
腐腸生疾, 내장을 썩혀 백병을 만들고
迷性失德. 본성을 잃고 덕망을 잃게 하네
在身戕身, 개인적으론 몸을 망치고
在國覆國. 국가적으론 나라를 망친다
我嘗其毒, 나도 그 독을 맛보았고
子阽其窖. 그대는 위험한 지경에 빠져들었네
抑之有誡, 술을 자제하라는 경계가 있으니
胡不共勗? 어찌 함께 절주에 힘쓰지 않으랴
剛以制之, 굳센 의지로 술탐을 억눌러
自求多福. 스스로 복을 구해야 하리
【부록】
이백(李白) 〈장진주(將進酒)〉
君不見, 黄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결이 하늘 끝에서 내려와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
君不見, 髙堂明鏡悲白髪, 朝如青絲暮成雪.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고대광실에 계신 분 거울 속 슬픈 백발은 아침에 검던 머리칼 저녁에 눈같이 희어졌음을.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살다가 득의했을 땐 환락을 다해야지, 빈 술잔이 헛되이 달과 마주하게해선 안 된다네.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하늘이 나를 낳으심은 반드시 쓸데가 있어서이고, 천금은 쓰고 나면 다시 벌 수 있다네.
烹羊宰牛且為樂, 㑹須一飲三百杯.
양 삶고 소 잡아 한바탕 즐겨보세. 오늘 한번 마셨다하면 삼백 잔은 마셔야하리.
岑夫子, 丹丘生, 將進酒, 君莫停.
잠선생 단구씨, 한 잔들 하시게. 술잔 멈추지 마시고.
與君歌一曲, 請君為我傾耳聽.
내 노래 한 곡조 할 테니 그대들 귀 기울여 들어주오.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復醒.
매일 산해진미 먹는 삶 대단한 거 아니라네. 다만 나의 바람은 취해서 깨지 않는 것.
古來聖賢皆寂寞, 唯有飲者留其名.
자고로 성현은 다 고독한 삶이었지, 오직 마시는 자 이름을 남겼다네.
陳王昔時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
조식이 평락관에서 잔치를 열었을 때 한말에 만량 술 마시며 마음껏 즐기며 놀았다더군.
主人何為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
주인이여 어째 돈 모자란다 하시오, 술 더 사와 우리 한번 통쾌하게 마십시다.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내 오색 점박이 명마, 값비싼 가죽 외투, 아이놈 시켜서 명주와 바꿔 오라 하시오
與爾同銷萬古愁!
우리 함께 진탕 마셔 만고의 시름을 녹여 보세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