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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언행록-관직생활

  • 등록일 20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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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언행록-관직생활

 

시사(時事)가 일변하자 선생은 포부를 펴볼 뜻이 없어서 단양의 외직으로 나왔는데, 장차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에서였다.

공무의 여가에는 오직 책읽기를 즐겼으며, 혹은 혼자서 구담(龜潭)이나 석문(石文)같은 곳을 찾아가 종일토록 거닐다가 돌아왔다.

돌아올 때 보면 나들이 물품들(行李)이 소탈하여 단지 괴석(怪石) 두 개만 (말에)실었을 뿐이다. 풍기군수로 이동해서 학교에 관심을 갖었다. 무릉주신제(주세붕)가 일찍이 백운동서원을 창건했으나 아직 일이 마무리가 되지 않고 있었는데, 선생이 글을 올리고 방백(方伯)이 조정에 전달하였다.

(조정에서)서원에 사액(賜額)하고 서적을 반급(頒給)하는 일이 이때 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틈이 있는 날은 서원에서 학생들과 열심히 학문을 강론하였는데, 반드시 고인의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대하여 거듭 친절하게 학생들에게 알려 깨우쳐주셨다.

 

[김성일]

 

退溪先生言行錄 -居官

時事一變, 先生無意行道, 丹陽之出, 蓋將爲賦歸計也. 簿書之暇, 惟以

書史自娛,或獨往龜潭石門之間, 倘徉終日而返. 比還, 行李蕭然, 只載二箇怪石而已. 移守豐基, 畱意學校. 武陵周愼齋, 曾創白雲洞書院而事尚未竟, 先生上書. 方佰轉達于朝, 其賜額頒書, 蓋自先生始也. 暇日, 到院中, 與諸生講学不倦, 必以古人爲己之學, 諄復告諭焉.

[金誠一]

 

 

 

 


*시사(時事): 이 때(명종2, 1547)는 을사사화 이후 국정이 혼란을 거듭하던 과정에서 홍문관 응교로 재직 중 사헌부 등이 봉성군에게 죄를 청하니 선생은 만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