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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經集傳』「序」(권영대)
- 등록일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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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經集傳』「序」
慶元己未冬。 先生文公。 令沈。 作書集傳。 明年。 先生殁。 又十年。 始克成編。 總若干萬言。
嗚呼。 書。 豈易言哉。 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 皆載此書。 而淺見薄識。 豈足以盡發藴奥。 且生於數千載之下。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 亦已難矣。然。 二帝三王之治。 本於道。 二帝三王之道。 本於心。 得其心。 則道與治。 固可得而言矣。 何者。 精一執中。 堯舜禹相授之心法也。 建中建極。 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 曰德。 曰仁。 曰敬。 曰誠。 言雖殊。 而理則一。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 至於言天。 則嚴其心之所自出。 言民。 則謹其心之所由施。 禮樂敎化。 心之發也。 典章文物。 心之著也。 家齊國治而天下平。 心之推也。 心之德。 其盛矣乎。
二帝三王。 存此心者也。 夏桀。 商受。 亡此心者也。 太甲成王。 困而存此心者也。 存則治。 亡則亂。 治亂之分。 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 後世人主。 有志於二帝三王之治。 不可不求其道。 有志於二帝三王之道。 不可不求其心。 求心之要。 舍是書。 何以哉。 沈。 自受讀以來。 沈潛其義。 參考衆説。 融會貫通。 廼敢折衷。 微辭奥旨。 多述舊聞。 二典禹(三)謨。 先生。 蓋嘗是正。 手澤尚新。
嗚呼惜哉。 集傳。 本先生所命。 故凡引用師説。 不復識别。 四代之書。 分為六卷。 文以時異。 治以道同。 聖人之心見於書。 猶化工之妙著於物。 非精深。 不能識也。 是傳也。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 雖未必能造其微。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 因是訓詁。 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
嘉定己巳三月既望。 武夷蔡沈。 序。
『서경집전』「서」
경원(남송 영종의 연호) 기미년(1199) 겨울에 선생 주문공이 나로 하여금 『서집전』을 짓게 하시고 이듬해에 선생이 별세하였으며, 다시 10년 만에 비로소 책이 이루어졌으니, 모두 약간 10,000자이다.
아! 『서경』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二帝・三王이 천하를 다스린 大經大法이 모두 이 책에 실려 있으니, 식견이 얕은 자가 어찌 깊은 뜻을 다 발명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수천 년 뒤에 태어나서 수천 년 전의 것을 講明하려 하니, 또한 이미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二帝・三王의 정치는 道에 근본하였고 二帝・三王의 도는 마음에 근본하였으니, 그 마음을 알면 道와 政治를 진실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精一執中은 堯・舜・禹가 서로 전수한 心法이요, 中을 세우고 極을 세움은 商나라 湯王과 周나라 武王이 서로 전수한 心法이다. 德과 仁과 敬과 誠이 글자는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하나이니, 모두 이 마음의 묘함을 밝힌 것이다.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는 마음의 所自出을 엄하게 하였고, 백성을 말함에 이르러는 마음이 말미암아 베풀어짐을 삼갔으니, 禮樂과 敎化는 이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典章과 文物은 이 마음이 드러난 것이요,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나라가 다스려져서 천하가 평안해짐은 이 마음이 미루어 확대된 것이니, 마음의 德이 盛大하다 할 것이다.
二帝와 三王은 이 마음을 보존한 자이고, 夏나라 桀王과 商나라 受王은 이 마음을 잃은 자이고, 太甲과 成王은 애써서 이 마음을 보존한 자이니, 보존하면 다스려지고 잃으면 혼란하니, 다스려짐과 혼란함의 구분은 마음을 보존하느냐 보존하지 못 하느냐의 여하에 달려있을 뿐이다. 후대의 군주가 二帝・三王의 정치에 뜻을 두려 한다면 그 道를 찾지 않을 수 없고, 二帝・三王의 道에 뜻을 두려 한다면 그 마음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마음을 찾는 요점은 이 책을 버린다면 무엇으로 하겠는가.
나는 이 책을 배워 읽은 이래로 그 뜻에 침잠하고 여러 학설들을 참고하여 融會貫通하고서야 이에 감히 절충하되 隱微한 말과 깊은 뜻은 옛날에 들은 것을 기술함이 많고, 二典과 大禹謨는 선생이 일찍이 시정하시어 손때가 아직도 새로우니, 아! 애석하다.
集傳은 본래 선생이 명하신 것이므로 인용한 모든 師說을 다시 별도로 標識하여 구별하지 않았다. 虞・夏・殷・周 四代의 글을 나누어 6卷으로 만들었으니, 글은 때에 따라 다르나 정치는 道가 같다. 聖人의 마음이 책에 나타남은 化工(하늘의 조화)의 묘함이 물건에 드러나는 것과 같으니, 精深한 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이 集傳은 堯・舜・禹・湯・文・武・周公의 마음에 있어서는 비록 그 은미한 경지에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堯・舜・禹・湯・文・武・周公의 글에 있어서는 이 訓詁를 따른다면 또한 그 뜻의 대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嘉定 己巳年(1209) 3월 旣望에 武夷 蔡沈은 쓰다.
